초안토론:이거 (고려 중기)
새 주제마지막 의견: 2년 전 (전문윤님) - 주제: 이 인물의 허구성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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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물의 허구성에 대해[편집]
- 본문에 화주(和州)의 낭장(郞將)으로 있던 그는 성문을 열어 주어 진압군의 진입을 도왔다.라는 기술이 있는데, 이는 『고려사』 「최균전」의 기록을 반대로 왜곡한 것입니다. 낭장 이거는 오히려 조위총(趙位寵)의 장수인 김박승(金朴升) 등에게 화주의 성문을 열어 주어 병마사(兵馬使) 이의(李儀), 병마부사(兵馬副使) 최균(崔均) 등을 죽게 만든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거에 대한 『고려사』의 유일한 기록입니다. 이거의 형인 이의방(李義方)은 이보다 2개월 뒤인 12월에 죽었으므로, 이의방의 동생인 이거는 이 인물과는 동명이인일 것입니다.
- 본문에 하빈군(河濱君)이나 사열부원군(沙熱府院君) 등의 작호가 보이는데, 『고려사』 「선거지」에 의하면 신하를 군이나 부원군에 봉하는 제도는 1298년(충렬왕 24)부터 시행되었으므로, 이는 명백한 허구입니다. 당시에는 신하를 공·후·백·자·남에 봉했습니다.
- 본문에 왕사(王師)라는 말이 3건이나 보이는데, 이는 승려(그 중에서도 고승)만 오를 수 있는 지위였습니다.
- 본문에 1243년(고려 고종 30년) 고령을 이유로 관직을 사퇴하려 하였으나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계속 출사하였으며, 그 해에 사망하였다.라는 기술이 있는데, 『고려사』 「고종세가」에 의하면 고종(高宗) 재위기에 궤장을 하사받은 인물은 최충헌(崔忠獻)과 최종준(崔宗峻), 이 2명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