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주 불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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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에르네스 장마리 불랑제
Georges Ernest Jean-Marie Boulanger
나다르가 촬영한 불랑제.
나다르가 촬영한 불랑제.
Georges Boulanger - signature.png
프랑스 프랑스 제3공화국전쟁장관
드 프레이시네 내각
임기 1886년 1월 7일-1887년 5월 31일
총리 샤를 드 프레이시네
전임 샤를 드 프레이시네
후임 테오필 페롱
프랑스 프랑스 제3공화국국민의회 의원
임기 1888년 8월 1일-1889년 4월 4일
지역구 노르주
신상정보
출생일 1837년 4월 29일
출생지 프랑스
사망일 1891년 09월 30일 (54세)
사망지 벨기에 브뤼셀
학력 생시르 사관학교
정당 애국자동맹
배우자 Lucie Renouard (m. 1864년)
자녀 엘렌 마리 불랑제
마르셀 불랑제
별명 복수 장군 (Général Revanche)
군사 경력
복무기간 1856년–1887년
소속 프랑스 육군
최종계급 준장(1성장군)
지휘 제114보병연대
참전 제2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코친차이나 전역
제3차 이탈리아 독립전쟁
보불전쟁
프랑스의 튀니지 정복

조르주 에르네스 장마리 불랑제(프랑스어: Georges Ernest Jean-Marie Boulanger, 1837년 4월 29일 ~ 1891년 9월 30일)는 프랑스 제3공화국군인, 정치인이다. 제3공화국 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로, 너무 큰 지지를 받았기에 그 지지세가 절정에 달했던 1889년 1월에는 독재자가 될 위험이 있다고까지 여겨졌다. 불랑제의 지지기반은 파리를 비롯한 도시의 노동자 계층과 농촌의 전통주의적 천주교도, 왕당파들이었다. 불랑제는 보불전쟁의 복수를 해야한다는 공격적 국민주의를 주장했고 이를 복수주의라고 한다. 불랑제 본인도 복수 장군(프랑스어: Général Revanche)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1889년 9월 선거에서 불랑제파는 대패했고 이후 불랑제의 정치적 영향력은 급속히 줄어들었다. 불랑제파의 쇠퇴와 함께 프랑스의 보수주의, 왕당파주의는 심하게 위축되어 1940년 비시 정권이 출범하기 전까지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불랑제파가 축출된 뒤 프랑스 정국은 기회주의적 공화주의자들이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