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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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씨는 중국과 한국의 성씨이다. 2015년 대한민국 통계청 인구 조사에서 22,363명으로 조사되어 한국의 성씨 인구 86위이다.

기원[편집]

『좌씨전(左氏傳)』과 『계고집성(稽古集成)』에 중국 정(鄭)나라 목공(穆公/繆公)의 증손 가운데 인단(印段)이 조부의 이름인 ‘자인(子印)’의 (印) 자를 따서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교동 인씨[편집]

교동 인씨(喬桐 印氏) 시조 인서(印瑞)는 진(晉)나라 풍익대부(馮翊大夫)로서 300년(기림이사금 3년) 신라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였다. 33세손인 인빈(印份)이 고려 인종 때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내고, 교수부원군(喬樹府院君)에 봉해졌다.[1] 39세손 인공수(印公秀)가 대장군과 필도치(必者赤)를 역임하고,[2] 41세손 인당(印璫)이 1356년(공민왕 5년)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3] 인당의 아들인 인해(印海)는 1377년(우왕 3) 양광도 부원수(副元帥)가 되었다. 2015년 인구는 20,737명이다.

연안 인씨[편집]

연안 인씨(延安 印氏) 시조 인후(印侯)는 몽골 사람으로 1275년(고려 충렬왕 1년)에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따라 고려에 와서 귀화하였다. 본명은 훌라타이(忽刺歹)였으나, 당시의 고려 대장군 인공수(印公秀)와 친하여 그의 성을 빌려 썼다. 인후는 판밀직지도첨의찬성사(判密直知都僉議贊成事) 등을 거쳐 자의도첨의사사(咨議都僉議司事) 평양군(平壤君)에 임명되었고, 충선왕이 복위한 뒤 첨의밀직(僉議密直)에 임명되었다가 검교정승(檢校政丞)이 더해졌으며, 충근보우공신(忠勤輔佑功臣)의 호를 받았다.[4] 인후의 아들 인승광(印承光)은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문과에 급제하여 호군(護軍)을 역임하였고, 인승광의 서제(庶弟)인 인승단(印承旦)은 음보로 1345년(충목왕 1)에 좌정승이 되었고, 1352년(공민왕 1)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에 봉해졌다.[5] 2015년 인구는 164명이다.

인물[편집]

  • 인공수(印公秀) : 고려 대장군
  • 인후(印侯) : 고려 때 몽골에서 귀화한 장군
  • 인승단(印承旦, ? ~ 1356년) : 고려 좌정승, 연안부원군(延安府院君)
  • 인당(印璫, ? ~ 1356년) : 고려 첨의평리(僉議評理), 서북면병마사(西北面兵馬使), 참지정사(參知政事)
  • 인해(印海) : 고려 후기 무신.
  • 인원보(印原寶, ? ~ 1388년) : 고려 말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
  • 인태식(印泰植, 1902년 ∼ 1975년) : 대한민국 제6대 국회의원
  • 인교진(印喬鎭, 1980년 ~ ) : 배우

각주[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