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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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 印公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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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의 대장군 | |
| 군주 | 충렬왕 |
| 신상정보 | |
| 출생일 | 미상 |
| 출생지 | 미상 |
| 사망일 | 미상 |
| 사망지 | 미상 |
| 국적 | 고려 |
| 성별 | 남성 |
| 본관 | 교동 |
생애
[편집]아버지는 중랑장, 병마절제사, 병부상서를 지낸 인대신이다.
인공수가 원종에게 원나라 풍속을 따라 복색을 고치기를 권하였는데, 원종은 “나는 차마 조종조의 법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나 죽은 다음에 경들이 마음대로 하라.” 라고 말하면서 거절했다.[1]
1271년(원종 12년)에 그는 몽골에 보내져서 삼별초를 칠 때 몽골 장군 아해(阿海)가 겁내어 구원하지 않은 일을 아뢰니, 황제가 아해를 면직시키고 소환하였다.[2]
같은 해 2월 다시 보성천호(寶城千戶) 등과 함께 몽골에 가서 둔전(屯田)의 폐지와 왕의 친조(親朝)를 주청하고 돌아왔다.[3]
1275년(충렬왕 원년) 그는 문하시중 김방경(金方慶)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전함·병량(兵糧)을 마련하는 데 대한 애로를 진정하고, 일본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다.[4]
후에 필도치(必闍赤: 정방의 서기직)가 되어[5] 기무(機務)에 참여하였다.
1276년(충렬왕 2년)에는 다루가치와 함께 홍주(洪州)에서 금을 캐었다.[6]
1277년(충렬왕 3년)에 환관과 수장(守莊)의 무고로 시각장애인 승려 종동(終同)을 국문하라는 명을 받았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