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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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수(印公秀)은 고려의 무신, 대장군, 정치인이다. 본관은 교동(喬桐)이다.

생애[편집]

아버지는 중랑장, 병마절제사, 병부상서를 지낸 인대신이다.

인공수가 원종에게 원나라 풍속을 따라 복색을 고치기를 권하였는데, 원종이 이르기를, “나는 차마 조종조의 법을 갑자기 바꿀 수 없으니, 나 죽은 다음에 경들이 마음대로 하라.” 하였다.

1271년(원종 12년) 장군 인공수(印公秀)는 몽골에 보내져서 삼별초를 칠 때 몽골 장군 아해(阿海)가 겁내어 구원하지 않은 일을 아뢰니, 황제가 아해를 면직시키고 소환하였다.[1]

같은 해 2월 다시 보성천호(寶城千戶) 등과 함께 몽골에 가서 둔전(屯田)의 폐지와 왕의 친조(親朝)를 주청하고 돌아왔다.[2]

1275년(충렬왕 1년) 대장군 인공수(印公秀)는 문하시중 김방경(金方慶)과 함께 원나라에 가서 전함·병량(兵糧)을 마련하는 데 대한 애로를 진정하고, 일본정벌의 중지를 요청하였다. 표문에 올려 말하기를, “소방(小邦)이 근래 역적을 소탕하느라고 대군의 군량을 벌써 몇 해를 두고 집마다 거두었으며, 게다가 왜국을 정벌하려고 전함을 수리 건조하여 장정은 모두 공사 부역에 나가고 노약자들이 겨우 밭갈고 씨뿌렸는데, 처음에는 가물고 나중에는 홍수가 져서 곡식이 잘 익지 못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군(軍)ㆍ국(國)의 비용을 가난한 백성에게서 모아 들이니 백성의 피폐함이 지금처럼 심한 적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전쟁에 상하고 물에 빠져 돌아오지 못한 자가 많으니, 비록 남은 백성이 있으나 어느 세월에 소생될지 모르겠습니다. 만일 다시 일본을 치게 된다 하더라도 필요한 전함과 군량은 실로 소방에서 감당할 수 없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간절한 정성을 굽어 살피셔서 애절한 호소를 알아 주소서.” 하였다.[3]

후에 필도치(必闍赤: 정방의 서기직)가 되어 기무(機務)에 참여하였다.

가족 관계[편집]

  • 부친 : 인대신
  • 장인 : 김지숙

각주[편집]

  1. 고려사절요》 제19권 원종 순효대왕 2(元宗順孝大王二)
  2. 《동국통감(東國通鑑)》 권36 고려기(卷36 高麗紀)
  3. 고려사절요》 제19권 충렬왕 1(忠烈王一)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