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무라 우자에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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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아가리 타치바나
우즈마키

이치무라 우자에몬 (일본어: 市村 宇左衞門 / 羽左衞門 いちむら うざえもん[*])은 가부키 배우의 묘세키이다. 이름의 부분은 7대까지는 宇左衛門 (우자에몬),그 이후로는 羽左衛門 (발음은 같음)을 사용하고 있다. 쇼와 시대까지 17대가 존재했다.

옥호는 7대까지는 불명, 7대 ~ 16대까지는 키쿠야, 16대 이후로는 타치바나야이다.

16대 이후의 정문은 네아가리 타치바나, 다른 문장은 우즈마키이다.

해설[편집]

당초 "이치무라 우자에몬"은 에도 3좌의 하나인 이치무라좌의 좌원(좌를 주재해 극장을 경영하는자)의 묘세키였지만, 겐로쿠 연간부터 좌원이 배우로 바뀌거나 반대로 배우가 좌원을 겸하거나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러나, 메이지 말년에 이치무라좌의 경영권이 타무라 나리요시의 손에 넘어가자, "이치무라 우자에몬"은 단지 배우의 묘세키가 되었다.

이치무라좌의 역사는, 간에이 연간에 무라야마 마타사부로가 에도에 와서, 가야쵸에 무라야마좌의 노렌을 올리며 시작되었다. 그러나, 무라야마좌의 경영은 부진하여, 해를 거듭할수록 부채가 쌓여갔다. 마타사부로의 뒤를 이은 무라타 쿠로에몬은 자신이 병약했던 적도 있고, 마타자부로가 몇달 뒤 병사하자, 곧바로 무라야마좌의 개최권을 매각했다. 이것을 매입한 사람이 코우즈케국 사람으로 무라야마 마타사부로의 문하생이었던 이치무라 우자에몬이다. 이때 좌명도 무라야마좌에서 이치무라좌로 변경되었다.

2001년 (헤이세이 13년)에 사망한 선대 이치무라 우자에몬은 17대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치무라 우자에몬을 실제로 계승한 사람은 12명이다. 나머지 5명은 모두 사후에 추증된 이치무라 우자에몬이다.

원래 "이치무라 우자에몬"이란, 무라야마좌의 개최권을 매입해, 이치무라좌를 시작한 코우즈케국 사람 이치무라 우자에몬의 본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치무라 우자에몬의 종조가 아니라, 3대로 되어있다. 이는 그에 앞서 무라야마좌 좌원이었던 무라야마 마타사부로무라타 쿠로에몬의 두 이름이 각각 초대 우자에몬과 2대 우자에몬으로 추증되었기 때문이다. 또, 오늘날 4대, 6대, 7대 우자에몬으로 알려진 인물은, 모두 제반 사정으로 이치무라좌 좌원은 계승했지만, 우자에몬의 이름은 계승하지 못한 자로, 사후에 이치무라 우자에몬에 추증되어 대대로 추가 된 것이다.

역대 이치무라 우자에몬[편집]

13대 이치무라 우자에몬의 사탕판매 와마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