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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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정권 때의 오사카-사카이의 풍경을 그린 「풍신기대판도병풍」.

사카이(일본어: )는 오사카 만에 접하고 오사카 시의 남쪽에 위키한 시가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다.

"사카이"는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지경 계(堺) 자로 "경계"라는 뜻이다. 이는 이 지역이 과거 셋쓰 국, 가와치 국, 이즈미 국 3개 율령국의 "경계" 였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중세에 무역항으로 발전하여 "동양의 베니스"로 영화를 다했다. 센고쿠 시대에는 환호도시가 되었고, 자치적인 도시 운영이 이루어졌다. 1562년 포르투갈인 선교사 가스파르 빌레라가 쓴 기록에 보면 “이 도시에는 다른 곳에서는 전례없이 패자도 승자도 없이 모두 평화롭게 생활한다. 도시는 심히 견고하고 서쪽은 바다로, 반대쪽은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항성 물이 가득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1598년 아브라함 오르텔리우스의 일본 지도에도 "메아코(Meaco; 수도권, 즉 교토)"와 함께 "Sacay"라고 기록되어 서양인들에게 알려진 주요 도시로 인식되었다. 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성을 세웠으나 오사카 전투 때 전소. 현재의 정할(町割)은 겐나 연간에 재건한 것이다.

중세의 사카이가 그려진 작품으로 「주길제례도병풍(住吉祭礼図屛風)」, 「엄도·주길제례도병풍(厳島・住吉祭礼図屛風)」, 「섭진국명소항진도병풍(摂津国名所港津図屛風)」, 「천교립·주길사도병풍(天橋立・住吉社図屛風)」, 「풍신기대판도병풍(豊臣期大阪図屏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