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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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 원호단 / 충의 / 웅비
전체 명칭육군 웅비 축구단
창단1968년 11월
해단1983년 12월
원정

육군 축구단육군 소속 축구단으로 실업축구에 참가하였다. 초기에는 육군 예하 특무부대 (1953년 창단), 첩보부대 (?), 공병단(한국전쟁 중 창단), 병참단 (1953년 한국전쟁 이후 창단), 헌병감실(?), 육군보병학교 (?) 등 각 부대별로 축구단이 존재하여 각종 대회에 참가하였다.[1]

그러나 1965년 경 병참단을 제외한 육군의 주요 축구단들이었던 특무대, 헌병감실, 공병단 등이 공병단 축구단을 위주로 통합이 되어 단일팀이 되어 병참단과 공병단 축구단 2개 축구단으로 재편되었다.[2] 1968년말 이마저도 재정상의 문제로 두 구단이 통합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육군을 대표하는 하나의 축구단이 만들어진다.[3][4]

그 후 이 축구단이 계속해서 원호단,[5] 충의, 1983년부터 웅비[6][7] 등으로 변경되며 1984년 국군체육부대로 3군 축구단이 통합하며 상무 축구단일 될때까지 이어지게 된다. 해군 축구단과 라이벌 관계였으며[8] 그 후 1984년 1월 국군체육부대로 통합되면서 해군 축구단, 공군 축구단 등과 함께 상무 축구단이 되었다.[9]

육군 내 주요 축구단 통폐합사[편집]

1965년 이전[편집]

1965년 ~ 1968년[편집]

1969년 이후[편집]

  • 육군 축구단

(공병단병참참 축구단이 통합하여 대표팀 성격의 하나의 축구단으로 재편되었으며
원호단, 충의, 웅비 등으로 구단명칭 변경)

유명 선수[편집]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1. “국군축구의 현황”. 동아일보. 1962년 4월 21일. 
  2. “스포츠 일 년(3) 축구”. 동아일보. 1965년 12월 22일. 
  3. “구실은 재정상 애로”. 경향신문. 1968년 11월 4일. 
  4. “병참, 공병감실 축구팀 병합”. 동아일보. 1968년 11월 5일. 
  5. “육군 소속 호칭변경 경기단체별로 통보”. 경향신문. 1978년 6월 9일. 
  6. “육군체육지도대 발족”. 경향신문. 1982년 11월 1일. 
  7. “실업축구도 운영은 프로처럼 본거지제도 채택”. 동아일보. 1982년 12월 15일. 
  8. “우리는 맞수 축구 충의와 해군”. 경향신문. 1981년 2월 13일. 
  9. “군경기단체 국군체육부대로 통합 팀 명칭 상무 마스코트는 불사조로”. 동아일보. 1984년 1월 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