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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알찬 글 후보/독일의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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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통일[편집]

  • 사용자:Heiliges 제안: 알찬 글이었던 영어 위키의 문서를 그대로 번역해 왔습니다. 의견 부탁드립니다. / 2024년 4월 28일 (일) 16:36 (KST)

기준[편집]

  1. 믿을 수 있는 높은 품질
    • 전문적인 기준이 적용된 잘 짜여진 글인가?
    • 주요한 사실과 세부사항, 문맥이 포함된 포괄적인 글인가?
    • 신뢰할 수 있는 출처에 기반한 확인이 이루어진 인용을 통한 신뢰할 수 있는 글인가?
    • 편향된 시각이 없는 중립적인 글인가?
    • 주요한 내용의 변함이 없이 안정된 글인가?
  2. 세부적인 양식 기준: 편집 지침과 다음 조건에 적합하는가?
    • 도입부 문단에 전체 문서의 내용이 간단히 잘 요약되어 있는가?
    • 목차의 구성이 알찬가?
    • 인용이 일관된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가?
  3. 멀티미디어: 저작권에 대한 설명이 충족하는 미디어 사용 정책에 일치하는 멀티미디어 자료가 있는가?
  4. 길이: 불필요한 세부사항 없이 주요 주제에 중점을 두고 있는가?

의견[편집]

정보 번역을 게시할 당시부터 바로 어제(4월 27일)까지 영어판에서 알찬 글이었던 문서입니다. 번역을 오늘(4월 28일) 끝마치고 일단 입후보하긴 했는데, 어제 공교롭게도 알찬 글에서 해제되었습니다. 해당 토론 내용을 보면 출처 자체가 부족한 것과 인용 일관성 부족이 문제인 것 같은데, 제가 번역할 당시에는 출처 부족에는 별다른 문제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 부탁드립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4월 28일 (일) 16:43 (KST)
의견 읽으면서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오타가 난 것으로 보이거나 조사가 빠진 것으로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제가 직접 수정을 했습니다. 적절한 편집이 맞는지 한 번 확인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이외에도 피드백이 있습니다.
  • #1848-1849년 독일 혁명과 폴란드 봉기에서는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문단이 있기 전까지 출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에서 "찰흙"으로 만든 왕관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찰흙이 여기서 어떠한 비유인지 내용주 등으로 설명을 좀 더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모래성 같은 비유일까요...
  • #프라하 평화 조약과 북독일 연방에서 "이전에 독일을 이끌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부분의 동맹국과 함께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프로이센이 합병하는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일부를'이라는 조사를 써서 읽기에 어색합니다.
  •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 감정을 잘 보여준다."라는 문장 이후의 출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 #'통일 과정의 최종 결과물'로서의 전쟁에서 "슐레스비히-홀슈타인 문제에서 서로의 성실함도 입증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성실함'이 어떤 의미인지 바로 와닿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분야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정독해서 읽어 보았습니다. 출처가 문장 하나하나마다 빼곡히 달려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긴 했습니다. — Nt 2024년 4월 30일 (화) 02:54 (KST)
추가로, 이전에 작업하셨던 두 황제 문제나 지금 알찬 글 후보로 올라와 있는 문서들에 대해서는 타 언어 위키백과를 번역한 결과물이기에 토론란에 {{번역된 문서}}를 기입하는 것도 권해드립니다. — Nt 2024년 4월 30일 (화) 02:57 (KST)
@Nt: 직접 수정해주신 부분들은 모두 확인했습니다. '1848-1849년 독일 혁명과 폴란드 봉기'와 '프랑스와의 전쟁' 문단 같은 경우에는 하위 문단이 있어 그곳의 출처로 갈음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문서 가장 위의 개요에 출처가 달려있지 않듯이요. 그리고 '찰흙' 표현의 보충 설명으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국가원수와 황제대표단에서 '혁명의 썩은내'라는 표현을 가지고 왔습니다. 보수적인 편인 프로이센 국왕이 비교적으로 혁명적인 국민의회의 (왕이 생각하기에) "더러운" 왕관을 거부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성실함'이라는 표현이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가 가진 독일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익을 보호할 의지를 뜻하는 것으로 이해해서, 내용주로 이와 같이 보충 설명을 넣었습니다.
프라하 평화 조약 문단의 문장은 오스트리아가 그 동맹국들과 함께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는 의미이고, 나머지 문장은 모두 북독일 연방 조약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해당 문장은 '오스트리아와 동맹국은 / 조약에서 제외되었다. / 이 조약은 프로이센이 하노버 - 프랑크푸르트의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합병하는 조약"을 의미합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어서 문장을 "이전에 독일을 이끌었던 오스트리아 제국은 대부분의 남독일 동맹국과 함께, 프로이센이 북독일의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 전체와 헤센다름슈타트의 일부를 합병하는 북독일 연방 조약에서 제외되었다."로 수정했습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4월 30일 (화) 18:10 (KST)
@Heiliges 피드백 반영 감사합니다. 출처가 없어 보이는 문단에 대해서도 왜 그런지 이해했습니다. 추가적으로 피드백을 드리자면,
Nt 2024년 4월 30일 (화) 20:51 (KST)
@Nt: 초기 역사 문단의 출처는 추가로 두 개 보강했고요, 몰다비아와 왈라키아의 통일은 나중에 시간 날 때 생성하겠습니다. 현재 문서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붉은 링크들은 만들어볼 생각이 있는 것들입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5월 1일 (수) 18:42 (KST)[답변]
출처 보강 고맙습니다. 빨간 링크도 추후 생성될 것을 기대하며, 찬성하겠습니다. — Nt 2024년 5월 1일 (수) 21:37 (KST)[답변]
의견 이번에도 엄청난 기여에 놀랐습니다! 다음은 의견입니다.
  1. #제국의 구성국의 표 가독성이 아쉽습니다. 두번째 열의 폭을 늘리면 쉽게 해결되겠습니다.
  2. #민족사 작성 문단의 추가 정보 틀이 빨간링크여선 안되겠습니다. 이 문서를 꼭 생성하실 필요는 없으니 생성 계획이 없으시다면 지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도바울 (💬ℹ️) 2024년 5월 29일 (수) 12:54 (KST)[답변]
@Sadopaul: 해당 틀이 화면 크기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있습니다. 좌우 넓이가 충분하다면 깔끔하게 나오는데, 좌우 넓이가 비율상 좁으면 마지막 열이 밀려서 표시되네요. 영어판의 틀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고 기술적인 것도 잘 몰라서 제가 수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보기에 많이 좋지 않다면 옆의 표를 아예 삭제해버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문단의 추가 정보 틀은 제거했습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5월 29일 (수) 20:58 (KST)[답변]
의견 인물의 이름을 쓸 때 붉은색 링크로 되어 있거나 링크가 없으나 내용상 중요한 인물인 경우에는 이름 옆에 소괄호를 치고 그 나라 언어로 된 이름 또는 생몰년을 부기해주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 대단히 유명한 인물인 경우, 예를 들어 로마의 카이사르 같은 경우에는 그를 식별하기 위한 정보로서 원어명이나 생몰년이 전혀 필요하지 않지만, 그 밖에 덜 유명하거나 현재에도 활동 중인 동시대 인물인 경우에는 그를 적절하게 식별하기 위한 준거 기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조언은 붉은색 링크로 되어 있거나 링크가 없는 모든 인물의 이름 옆에 매번 원어명이나 생몰년 또는 그 둘 다를 부기해야 한다는 취지는 아닙니다. 그다지 내용상 중요하지 않은 인물인 경우에는 붉은색 링크인 경우에도 식별 정보 없이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통일의 조짐' 문단 아래에는 서술에서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역사적 주동인물인 '브레데 왕자', '한스 폰 뷜로 백작'과 문화인물인 '빌헬름 라아베', '카를 베데커', '막스 슈네켄부르거', '니콜라우스 베커' 등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음에도 이들은 전부 붉은색 링크로만 처리되어 있을 뿐 문서 내에서 적절한 식별자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에 적어도 위의 6명에 대해서는 이름 옆에 원어명이나 생몰년, 또는 필요한 경우에는 그 둘 다를 부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위 6명 외에도 문서 내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붉은색 링크로 되어 있거나 링크가 없는 인물에 대해서는 이러한 식별자를 직접 부기해주시면 더욱 감사할 것입니다. -- SCMBD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13:48 (KST)[답변]
@SCMBD: 문서 전체를 자세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독일의 통일은 어떤 한 인물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비스마르크나 빌헬름 1세, 슐리펜 등의 인물들에 의해 완전한 통일을 이룬 것은 사실이나, 문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그러니까 독일의 통일은 근본적으로 독일인들의 민족주의 정서 발달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말씀해 주신 인물들은 모두 이러한 정서에 휘말려서 잠시 언급된 것이며, 대부분의 붉은 링크로 된 인물들은 민족주의 정서를 설명하기 위해 예시로 든 인물들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해당 인물들은 "독일의 통일 주제에 상당히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해당 문서들이 생성되면 되었지 "독일의 통일 문서"에서 생몰연도나 원어 표기를 넣는 것으로 해당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했는지에 관한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시간이 많지 않아서 하고 싶은것들 위주로 번역해오고 있는데, 나중에 시간날 때 붉은 링크들도 차차 없애도록 하겠습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20:23 (KST)[답변]
@Heiliges 답변에 감사드립니다. 내용상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판단은 작성자 분께서 더 잘 아실테니 위 6명에 대한 부분은 첨언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여전히 본문에 인용된 몇몇 인물정보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민족주의적 자유주의의 출현과 보수적 대응 문단의 말미에는 "... 부르셴샤프트의 비밀스러운 대표이자 법학도인 카를 하인리히 브뤼게만(1810-1817)은 프로이센에 투옥되어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이라는 문장이 있는데, 여기서 브뤼게만의 옆에 적힌 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생몰년이 아니라 활동년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활동년인 경우에는 생몰년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정보를 부기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생몰년이 맞고 오타라면 시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 SCMBD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21:50 (KST)[답변]
해당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Heiliges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22:31 (KST)[답변]
@Heiliges 수고 많으셨습니다. -- SCMBD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22:46 (KST)[답변]
찬성 -- SCMBD (토론) 2024년 6월 14일 (금) 22:47 (KST)[답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