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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은 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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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 벗은 마하〉(스페인어: La maja desnuda) 또는 〈벌거벗은 마하〉는 스페인의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가 1797~1800년경에 그린 유화로, 현재 마드리드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침대 위 베개에 기대어 있는 누드 여성을 묘사하고 있으며 스페인의 귀족이자 많은 여성의 누드화를 소장하고 있었던 마누엘 데 고도이가 의뢰한 것으로 보인다. 고야는 〈옷 벗은 마하〉와 동일한 포즈를 취한 〈옷 입은 마하〉(La maja vestida)도 그렸으며 현재 프라도 미술관에서 〈옷 벗은 마하〉와 같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작품 속 여성은 〈옷 입은 마하〉 속 의상을 바탕으로, 마하(maja, 남성은 마호(Majo))라고 불리던 마드리드의 패셔너블한 하류층 여성으로 추측된다.

옷 벗은 마하
The Naked Maja 또는 The Nude Maja
스페인어: La maja desnuda
작가프란시스코 고야
연도1797~1800
매체캔버스에 유채
크기190 x 97 cm , 75 × 38 in
소장처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향한 모델의 직설적이고 부끄럽지 않은 시선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작품은 뚜렷한 부정적인 의미(예를 들어 성매매의 이미지와 같은) 없이 누드 여성의 음모를 묘사한 최초의 서양 작품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1] 당시 고야는 이 작품으로 교회 당국을 뒤흔들었을 뿐만 아니라 대중을 흥분시키고 당대의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 이 작품은 1901년부터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에 소장되어 있다.

설명[편집]

〈옷 입은 마하〉(하단) 속 마하의 모습이 〈옷 벗은 마하〉(상단) 보다 더 크게 묘사되어 있다.

두 가지 버전의 작품 모두 크기는 똑같지만 〈옷 입은 마하〉 속 여성이 〈옷 벗은 마하〉 속 여성 보다 크게 묘사되어 있다. 미술사학자 재니스 톰린슨(Janis Tomlinson)에 따르면 그림 속 마하는 거의 "프레임의 한계에 대담하게 맞서는" 것처럼 보이며 다른 "소심한" 누드 초상화에 비해 그녀를 더욱 뻔뻔하게 보이도록 한다. [2]

이 그림은 스페인 미술의 누드를 묘사하는 전통을 많이 따르고 있지만, 특히 그녀의 대담한 시선을 통해 의미 있는 방식으로 분명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옷 입은 마하〉 속 현대 의상을 입고 있는 여성의 모습은 작품의 초점이 벨라스케스의 〈로크비 비너스〉(Rokeby Venus)처럼 신화적인 주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발가벗은 모습의 스페인 여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3] 더 확실히 말하면, 벨라스케스는 비너스의 등만 드러내고 그린 반면, 고야는 나체의 여성을 정면으로 완전히 드러내어 그렸다.[4] 고야가 묘사한 여성의 체형은 짧고 각진 반면, 벨라스케스가 묘사한 비너스의 체형은 길쭉하고 곡선을 이루고 있다. 또한 벨라스케스의 비너스는 광택이 곱고 부드러운 견직물 위에 누워 있는데 반해, 고야의 마하는 맨 흰색 천에 누워있어 두 작품 간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5]

종교 재판[편집]

현재 작품이 만들어진 이유와 작품 속 인물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진 것은 없다. 두 버전의 그림 모두 1800년 알쿠디아의 공작 마누엘 데 고도이 총리가 벨라스케스의 〈로크비 비너스〉(Rokeby Venus)와 같은 작품과 함께 누드화 전용 컬렉션에 소장하고 있던 "인기 없고 성공하지 못한 예술" 목록에 처음으로 기록되었다.[6] 고도이는 이 작품을 1808년 스페인 종교 재판소 조사관에 의해 그의 다른 "미심쩍은 미술품"과 함께 발견되기 전까지 6년 동안 보관했다.[7] 고도이와 그의 컬렉션 큐레이터인 Don Francisco de Garivay는 재판소에 회부되어 "공공의 이익에 매우 외설적이고 해를 끼치는" 압수된 예술 작품의 배후에 있는 예술가들을 밝혀야 했다.

이러한 논란은 고도이의 총리직 해임을 요구하는 폭도 모임 이후 포퓰리즘적이고 정치적 동기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그 여파로 고야는 도덕적 타락 혐의로 지명되어 소환되었다.[8] 고도이는 그림을 소유하고 있을 때 발견되었기 때문에 고야는 "그가 왜 그런 짓을 했는지", 또 "누구의 요구에 따라, 어떤 관심이 그를 이끌었는지"를 밝혀달라는 요청을 받았다.[9] 그의 답변은 위기를 넘기지는 못했지만, 압수국장은 고야가 티치아노다나에 시리즈와 벨라스케스의 로크비 비너스를 모방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누드를 포함한 두 화가의 작품은 궁정과 교회로부터 존경을 받았으며, 종교 재판소는 이전에 로크비 비너스에서 어떠한 이의도 발견하지 못했다.

고야는 재판소가 그가 전통을 따르고 있으며 스페인의 펠리페 4세가 선호했던 벨라스케스의 그림을 모방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기소를 면했다.[10] 비너스의 초기 그림 또한 예술을 사랑하는 왕이 개인실, 즉 "폐하께서 식사를 마치고 퇴위하여 머무는 방"에서 보이지 않게 보관되어 있었다.[11] 사실, 1808년 종교 재판소의 영향력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책, 희곡, 그림 등 "위험한" 표현 형태에 대한 관심을 끌 수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이를 완전히 억제할 수는 없었다.[12]

각주[편집]

  1. Lovejoy, Bess (2014년 7월 11일). “Portrait of Ms Ruby May: Leena McCall's painting runs up against the pubic hair police”. Slate.com. 2014년 7월 11일에 확인함. 
  2. Tomlinson, 149
  3. Tomlinson, 149
  4. Connell, 196
  5. Tomlinson, 148
  6. Tomlinson, 148
  7. Connell, 196
  8. He was brought on a separate charge of collaborating with the French, that is of treason. See Connell 196
  9. Hughes, 333
  10. Connell, 197
  11. Portús, 62–63
  12. Hughes,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