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엘리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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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엘리노어
Joos van Cleve 003.jpg
포르투갈 왕비
프랑스 왕비
배우자 마누엘 1세
프랑수아 1세
자녀 카를로스
마리아
왕가 혼전:합스부르크 왕가
혼후:아비스 왕가
재혼후:발루아 왕가
부모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
후아나 라 로카
출생 1498년 11월 15일(1498-11-15)
사망 1558년 2월 25일 (59세)

오스트리아의 엘리노어(독일어: Eleonore) 또는 카스티야의 엘리노어(1498년 11월 15일 - 1558년 2월 25일)는 합스부르크 왕조의 일원으로, 후아나 여왕펠리페 1세의 딸이자 카를 5세의 누이다. 포르투갈에서는 레오노르, 프랑스에서는 엘리노어라고 불린다.

오스트리아의 여대공이자 카스티야 왕국인판타로 태어났으며, 마누엘 1세와 결혼해 포르투갈의 왕비가 되었다. 마누엘 1세는 그녀의 두 이모, 아라곤의 이사벨, 아라곤의 마리아와 결혼했지만 모두 사별하고 엘리노어를 세 번째 아내로 맞았다. 엘리노어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았지만 결혼한 지 3년만에 마누엘 1세는 죽었다.

한편 오랜 기간 동안 프랑스와 대립 중이던 엘리노어의 남동생 카를 5세프랑수아 1세마드리드 조약을 맺은 후 그에게 누이와의 결혼 의사를 타진했고 프랑수아 1세는 이를 승낙했다. 그러나 프랑수아 1세는 그 약속을 오랫동안 지키지 않았다. 마침내 1529년 프랑수아 1세의 어머니 사보이의 루이즈카를 5세의 고모 오스트리아의 마르게리타는 협상 끝에 캉브레 조약을 체결했다. 조약에 따라 프랑수아 1세는 카를 5세에게 인질로 잡혀 있던 두 아들들을 돌려받는 대신 이탈리아에 있는 모든 소유지와 아르투아 지방, 플랑드르 지방에 대한 권리를 포기했다.[1] 1530년, 프랑수아 1세의 왕자들과 함께 프랑스에 도착한 엘리노어는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고 1547년 프랑수아 1세와도 사별했다. 엘리노어는 프랑스의 전 왕비로서 투렌 공작령을 받았다.

가족[편집]

주석[편집]

  1. 오리외 저, 《카트린 드 메디치》, 이재형 역, 들녘,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