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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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엄씨 (寧越 嚴氏)
영월 엄씨 종문
영월 엄씨 종문
관향 강원도 영월군
시조 엄림의(嚴林義)
주요 집성촌 강원도 영월군
함경남도 함주군
경기도 화성시
주요 인물 엄수안, 엄유온, 귀인엄씨, 엄흔, 엄흥도, 엄황, 엄집, 엄석정, 엄세영, 순헌황귀비, 엄준원, 엄주익, 엄주명, 엄복동, 엄항섭, 엄상섭, 엄민영, 엄병학, 엄정주, 엄기표, 엄영달, 엄앵란, 엄삼탁, 엄낙용, 엄태항, 엄기영, 엄호성, 엄기학, 엄홍길, 엄현성, 엄용수, 엄태준, 엄정화, 엄태웅, 엄지원, 엄지인, 엄홍식, 엄현경
인구(2015년) 140,206명
영월엄씨 대종회

영월 엄씨(寧越 嚴氏)는 강원도 영월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역사[편집]

영월 엄씨(寧越 嚴氏)의 시조인 엄림의(嚴林義)는 중국 한(漢)나라 시인 여요(余姚)사람 엄자능(嚴子陵)의 후예이며 당(唐)나라 상국(相國) 화음(華陰)의 일족(一族)이다. 엄림의(嚴林義)는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새로운 악장(樂章)을 만들어 이를 인근의 여러 나라에 전파하기 위해 보낸 파락사(波樂使)로, 영월 신씨(寧越 辛氏)의 시조인 신시랑(辛侍郞)과 함께 신라(新羅)에 동래(東來) 하였다가 본국(本國)에서 정변(政變)이 일어나자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영월 땅인 내성군에 안주(安住)한 것이 한국 엄씨의 시원(始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고려조에서 호부원외랑(戶部 員外郞)을 지내고 내성군(奈城郡)에 추봉되었다. 후손들에게 영월을 식읍으로 하사하자, 후손들이 그곳에 살면서 영월을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본관[편집]

영월(寧越)은 강원도 남부에 위치한 지명으로, 본래 고구려의 내생군인데 통일신라 경덕왕이 내성군으로 고치고 고려 초에 영월로 고쳐서 조선 1895년 영월군이 되었다.

분파[편집]

엄임의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엄태인(嚴太仁)은 검교군기감윤(檢校軍器監尹)벼슬로 군기공파(軍器公派) 아래로 13공계, 둘째 엄덕인(嚴德仁)은 복야벼슬로 복야공파(僕射公派) 아래로 28공계, 셋째 엄처인(嚴處仁)은 문과(文科)벼슬로 문과공파(文科公派) 아래에 단일공계로 3공파 42공계의 자손들로 형성되어 있다.

  • 군기공파(軍器公派) - 엄태인
  • 복야공파(僕射公派) - 엄덕인
  • 문과공파(文科公派) - 엄처인

인물[편집]

  • 엄수안(嚴守安, ? ~ 1298년) : 고려 문종 때 낭장 겸 어사 ·동경판관 등을 지내고 방보 등의 반란을 평정하였다. 충렬왕 때 전법총랑 ·남경부유수 ·남경부사 ·충청도지휘사 등을 지내고 밀직사부사로 치사하였다.
  • 엄유온(嚴有溫) : 조선을 창업한 개국공신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올라 1418년 좌군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가 되었다.
  • 엄흔(嚴昕, 1508년 ∼ 1543년) : 1525년(중종 20)에 생원이 되고, 1528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정자(正字)에 임명된 뒤 검열을 거쳐 호당(湖堂)에 들어갔다. 그 뒤 저작(著作)·부수찬·수찬(修撰)·전한(典翰)·이조좌랑·사인(舍人) 등을 역임하고, 1530년에는 지방관의 비행을 적발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되었다. 1531년에는 언로의 개방과 언관의 탄압중지 등을 건의하였다. 1541년 홍문관전한으로 있을 때 대간이 대신의 뜻에 맞추기 위하여 서경(署經)을 마음대로 바꾸는 행위를 비판하였다. 시문에 능하여 시조 1수가 『가곡원류』에 전하며, 유저인 『십성당집』 1권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 엄흥도(嚴興道) : 영월호장으로 단종이 세조에 의하여 상왕(上王)에서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에 안치되었다가 시해되자 시신을 수습하였다. 1585년(선조 18)에 종손인 정병(正兵) 엄한례(嚴漢禮)에게 호역(戶役)을 면제하고 노산군의 묘역을 수호(守護)하게 하였고, 현종 때 송시열(宋時烈)의 주청으로 자손을 등용하게 하였다. 숙종 때 공조참의에 증직(贈職)되었고, 영조 때 정문(旌門)을 내렸다. 뒤에 공조판서에 증직되었고, 사육신과 함께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충의(忠毅).
  • 엄집(嚴緝, 1635년 ∼ 1710년) : 1673년(현종 1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78년(숙종 4) 정언(正言)이 되고, 부교리(副校理)·사간·집의(執義)·승지 등 주로 삼사(三司) 청화직(淸華職)에 출입하였다. 1696년 개성부 유수에 승진되었다가 도승지로 전임되었다. 1701년 공조판서 때 장희빈을 논죄하였고, 다음해 의정부좌참찬·예조판서를 역임한 뒤 우참찬으로 있을 때 병으로 치사하고 기사소(耆社所)에 들었다. 기개가 있고 청렴하였으며, 권문을 멀리하고 당쟁을 싫어하여 세인의 칭송을 받았다.
  • 엄석정(嚴錫鼎, 1801년 ~ 1875년) : 1828년에 진사가 되었고, 헌종 때 당진현감을 거쳐 1844년 문과에 급제하였고, 홍문관부수찬이 되었다. 철종 때 김해부사를 거쳐 1864년 예방승지, 1865년 이조참판을 지냈다. 1869년에는 한성부판윤과 형조판서·의정부좌참찬을 지냈으며, 1872년 이조판서와 홍문관제학, 1874년 사헌부대사헌 등을 지내고, 뒤에 대호군이 되었다.
  • 엄세영(嚴世永, 1831년 ∼ 1900년) : 1864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교리·부수찬·부응교·사헌부집의·장악원정·종친부정(宗親府正) ·전라우도암행어사 등을 거쳐 1875년과 1878년에 이조참의를 지냈다. 1882년에는 병조참판·한성부우윤, 임오군란 때에는 청군영접관(淸軍迎接官)·한성부좌윤·성균관대사성, 1883년에는 한성부우윤·이조참판·예조참판·호군으로 정부당상(政府堂上), 1884년에는 한성부좌윤·반접관(伴接官)을 역임하였다. 1885년에는 정부유사당상(政府有司堂上)으로 협판교섭통상사무(協辦交涉通商事務) 묄렌도르프(Mollendorf)와 함께 거문도를 조사하였다. 1886년에는 감리인천항통상사무(監理仁川港通商事務)·인천부사, 1888년에는 행호군(行護軍)으로 정부당상, 1890년에는 사헌부대사헌·한성부우윤, 1891년에는 형조참판·한성부좌윤·병조참판, 1893년에는 사헌부대사헌·병조참판·형조참판을 역임하였다. 1894년 동학운동이 일어났던 시기에 행호군으로 삼남염찰사(三南廉察使)와 호남선무사로 임명되어 동학교도의 귀향을 주관하였다. 김홍집(金弘集) 내각 성립 후 두 차례에 걸쳐 농상아문대신(農商衙門大臣)·판중추부사를 지냈다. 1895년부터 1900년까지 중추원일등의관(中樞院一等議官)·경상북도관찰사·종1품관으로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하였다.
  • 엄항섭(嚴恒燮, 1898년 ~ 1962년) : 대한임시정부 선전부장
  • 엄기영(嚴基永, 1951년 ~ ) : 前 MBC 사장

과거 급제자[편집]

영월 엄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30명을 배출하였다.[1]

고려 문과

엄수안(嚴守安) 엄주혁(嚴柱爀)

문과

엄간(嚴幹) 엄현수(嚴慶遂) 엄경운(嚴慶運) 엄경하(嚴慶遐) 엄기(嚴耆) 엄도(嚴燾) 엄돈영(嚴敦永) 엄륜(嚴綸) 엄린(嚴璘) 엄복연(嚴復淵) 엄사만(嚴思晩) 엄사언(嚴思彦) 엄사헌(嚴思憲) 엄석관(嚴錫瓘) 엄석리(嚴錫履) 엄석정(嚴錫鼎) 엄성(嚴惺) 엄세영(嚴世永) 엄송수(嚴松壽) 엄우(嚴瑀) 엄익조(嚴益祚) 엄정구(嚴鼎耉) 엄주영(嚴胄永) 엄주완(嚴柱完) 엄주한(嚴柱漢) 엄집(嚴緝) 엄택주(嚴宅周) 엄한중(嚴漢重) 엄효량(嚴孝良) 엄흔(嚴昕)

무과

엄가함(嚴可諴) 엄경생(嚴敬生) 엄경원(嚴景元) 엄계생(嚴戒生) 엄계조(嚴啓祚) 엄계준(嚴繼俊) 엄광우(嚴光遇) 엄광조(嚴光祚) 엄국량(嚴國亮) 엄국주(嚴國胄) 엄국형(嚴國亨) 엄귀남(嚴貴男) 엄근룡(嚴謹龍) 엄끝룡(嚴唜龍) 엄남(嚴男) 엄대남(嚴大男) 엄대흥(嚴大興) 엄덕민(嚴德民) 엄두원(嚴斗援) 엄두필(嚴斗弼) 엄두한(嚴斗漢) 엄두환(嚴斗煥) 엄득강(嚴得綱) 엄득길(嚴得吉) 엄득립(嚴得立) 엄득립(嚴得立) 엄만륜(嚴萬崙) 엄망이(嚴望伊) 엄맥백(嚴麥白) 엄명(嚴命) 엄명국(嚴命國) 엄명오(嚴命五) 엄명찬(嚴命贊) 엄범(嚴凡) 엄봉빈(嚴鳳彬) 엄사경(嚴思敬) 엄사광(嚴思光) 엄사례(嚴思禮) 엄사욱(嚴思勗) 엄생수(嚴生水) 엄성후(嚴聖厚) 엄세량(嚴世良) 엄수징(嚴守澄) 엄승복(嚴承馥) 엄승순(嚴承順) 엄시건(嚴時建) 엄시성(嚴時成) 엄애성(嚴愛成) 엄예생(嚴禮生) 엄옥춘(嚴玉春) 엄용(嚴容) 엄우량(嚴宇亮) 엄원립(嚴元立) 엄유관(嚴有寬) 엄윤현(嚴允鉉) 엄응립(嚴應立) 엄인(嚴仁) 엄인쇠(嚴仁金) 엄정관(嚴正寬) 엄정록(嚴正祿) 엄정생(嚴貞生) 엄정열(嚴鼎悅) 엄종현(嚴宗賢) 엄준(嚴俊) 엄준명(嚴俊命) 엄중수(嚴仲守) 엄지건(嚴智健) 엄진옥(嚴眞玉) 엄징(嚴澄) 엄찬주(嚴燦珠) 엄치경(嚴致敬) 엄태귀(嚴泰貴) 엄태운(嚴太云) 엄한광(嚴漢光) 엄한복(嚴汗福) 엄한빈(嚴漢濱) 엄한신(嚴漢臣) 엄한조(嚴漢祚) 엄호생(嚴好生) 엄홍무(嚴弘武) 엄후일(嚴後逸)

생원시

엄가성(嚴可誠) 엄강수(嚴岡壽) 엄경윤(嚴慶胤) 엄녹중(嚴祿中) 엄도극(嚴道極) 엄린(嚴璘) 엄보섭(嚴普燮) 엄사민(嚴思敏) 엄서(嚴曙) 엄석정(嚴錫鼎) 엄성(嚴惺) 엄성윤(嚴聖潤) 엄송수(嚴松壽) 엄양섭(嚴陽燮) 엄용공(嚴用恭) 엄이화(嚴以和) 엄익하(嚴翼厦) 엄익현(嚴翼鉉) 엄인달(嚴仁達) 엄장섭(嚴長燮) 엄장한(嚴章漢) 엄저(嚴著) 엄전(嚴琠) 엄조영(嚴肇永) 엄주국(嚴柱國) 엄주만(嚴柱萬) 엄질(嚴耋) 엄집(嚴䌖) 엄찬(嚴纘) 엄천령(嚴千齡) 엄태장(嚴泰章) 엄택주(嚴宅周) 엄필엽(嚴必燁) 엄한징(嚴漢徵) 엄현좌(嚴顯佐) 엄형(嚴泂) 엄흔(嚴昕)

진사시

엄건영(嚴建永) 엄경수(嚴慶遂) 엄경우(嚴慶遇) 엄경운(嚴慶運) 엄경적(嚴慶迪) 엄경하(嚴慶遐) 엄규(嚴圭) 엄기(嚴耆) 엄기영(嚴琪榮) 엄도(嚴燾) 엄륜(嚴綸) 엄명손(嚴命孫) 엄사건(嚴思健) 엄사만(嚴思晩) 엄사면(嚴思勉) 엄사순(嚴思順) 엄사조(嚴思祖) 엄석겸(嚴錫謙) 엄석구(嚴碩耉) 엄석량(嚴錫良) 엄석명(嚴錫明) 엄석모(嚴錫模) 엄석진(嚴奭鎭) 엄성(嚴惺) 엄성구(嚴聖耉) 엄세영(嚴世永) 엄시(嚴蓍) 엄시화(嚴時龢) 엄신(嚴愼) 엄신영(嚴臣永) 엄용관(嚴用寬) 엄용순(嚴用順) 엄우(嚴瑀) 엄우인(嚴宇寅) 엄이신(嚴以愼) 엄익겸(嚴益謙) 엄전(嚴絟) 엄좌영(嚴佐永) 엄주영(嚴胄永) 엄주완(嚴柱完) 엄주하(嚴柱厦) 엄주한(嚴柱漢) 엄진구(嚴震耉) 엄집(嚴䌖) 엄철(嚴喆) 엄한붕(嚴漢朋) 엄한중(嚴漢重) 엄홍복(嚴弘福)

음관

엄도(嚴燾) 엄돈영(嚴敦永) 엄석겸(嚴錫謙) 엄석겸(嚴錫謙) 엄석리(嚴錫履) 엄석명(嚴錫明) 엄석명(嚴錫明) 엄석정(嚴錫鼎) 엄석정(嚴錫鼎) 엄석태(嚴錫泰) 엄세영(嚴世永) 엄시(嚴蓍) 엄익현(嚴翼鉉) 엄저(嚴著) 엄저(嚴著) 엄좌영(嚴佐永) 엄주만(嚴柱萬) 엄주한(嚴柱漢) 엄주흥(嚴柱興) 엄질(嚴耋) 엄찬섭(嚴燦燮) 엄학영(嚴鶴永)

집성촌[편집]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