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 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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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 현씨 (延州 玄氏)
관향 평안북도 영변군
시조 현담윤(玄覃胤)
주요 인물 현덕수, 현석규, 현석문, 현영운, 현정경, 현익철, 현희운, 현정건, 현상윤, 현정주, 현송자, 현진건, 현제명, 현석호, 현경윤, 현재덕, 현승종, 현영학, 현봉학, 현시학, 현영원, 현소환, 현경대, 현홍주, 현명관, 현기영, 현승일, 현병철, 현경자, 현삼식, 현재현, 현정택, 현영철, 현오석, 현인택, 현영희, 현정은, 현용진, 현기환, 현애자, 현경병, 현택환, 현주엽, 현재윤
인구(2000년) 59,096명 (124위)
연주 현씨 대종회

연주 현씨(延州 玄氏)씨는 평안북도 영변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고려 의종 때 도령중랑장(都領中郞將)을 역임하고 명종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으며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역사[편집]

연주 현씨(延州 玄氏)의 시조 현담윤(玄覃胤)은 의종(毅宗) 때 도령중랑장(都領中郞將)이 되었고, 명종(明宗)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평정하여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올랐으며 연산군(延山君)에 봉해졌다.

본래 현담윤은 평안도 연주(延州)의 토착 세력으로 큰 세력을 이루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계기로 중앙관직에 진출하게 되었다고 추측된다. 그 이후 현씨가 크게 성장하는 것은 현담윤의 세 아들이 중앙정부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장남 현덕수(玄德秀)는 1174년(명종 4)에 서경(西京)에서 조위총(趙位寵)의 난 때 연주도령(延州都領)인 아버지와 함께 연주성(延州城)을 굳게 지켜 난을 평정한 공으로 내시지후(內侍祗候)가 되었고 이후 안남도호부부사(安南都護府副使), 도관낭중(都官郎中), 병부낭중(兵部郎中), 사재소경(司宰少卿), 전중소감(殿中少監)을 거쳐 병부상서(兵部尙書)에 이르렀다.[1]

차남 현이후(玄利厚)는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를 지내고 광성군(廣城君)에 봉해졌다.

삼남 현덕유(玄德裕)는 1186년(명종 16) 문과에 급제한 후 이부(吏部)와 예부(禮部)의 시랑(侍郞)을 거쳐 서경유수(西京留守)로 나갔다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로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낸 후 대사공(大司空)에 이르러 회원군(檜原君)에 봉해졌다.[2] 9세손 현석규(玄錫圭)가 1478년(성종 9년) 평안도관찰사로 나아가 선정을 베풀었고, 1480년 건주위(建州衛) 정벌에 공을 세워 우참찬(右參贊)에 올랐다.

본관[편집]

연주(延州)는 평안북도 영변군(寧邊)의 옛 이름이며 영변은 영주(迎州)와 무주(撫州)의 합쳐진 지명이다. 970년(고려 광종 21) 연주(延州)로 고쳐 지주사(知州事)를 두었으며, 995년(성종 14)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다가 공민왕 때 연산부(延山府)로 승격되었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로 개편되었다. 무주는 고려의 운남군(雲南郡)인데 995년 무주방어사라 하였다가 공민왕 때 태주(泰州)로 이속되었고, 1391년(공양왕 3) 감무(監務)를 두면서 태종 때 무산현(撫山縣)이 되었다. 1419년(세종 11) 연산과 무산을 합하여 영변(寧邊)으로 개칭하고 도호부로 승격하였다가 세조 때 다시 연주(延州)를 나누어 운산군(雲山郡)에 속하게 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영변군으로 개칭되었다.

분파[편집]

현씨의 본관은 연주를 비롯하여 성주(星州), 창원(昌原), 순천(順天), 천녕(川寧) 등 무려 106본이 있는 것으로 문헌에 전해지나 현존하는 본관은 30여 본에 불과하며 이들의 본관도 모두가 시랑공(侍郞公) 현담윤(玄覃胤)을 시조로 받드는 동조동근(同祖同根)의 자손들이 살았던 지명에 불과하므로 1747년(영조 23) 정묘보(丁卯譜)를 편수할 때 연주현씨로 단일화하였고, 1982년에 간행된 임술보(壬戌譜) 때도 문중의 합의에 따라 본관을 연주로 통일하였다. 1930년 국세조사 당시 연주 현씨 비율은 남한에 30%, 북한에 70% 정도로 남한에 비해 북한에 비교적 많이 분포하였으며, 주로 본향인 평안도 지방에 거주하였다. 2000년 통계청 조사 결과 남한에 현씨는 81,807명인데, 이 중 대종인 연주 현씨는 18,686가구 59,096명이다.

인물[편집]

  • 현덕수(玄德秀, ? ~ 1215년) : 1174년(고려 명종 4년)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병부상서에 이르렀다. 기로소의 시초가 되는 기로회 9인 중 1인.
  • 현석문(玄錫文, 1799년 ~ 1846년) : 기해박해 때 천주교 순교자
  • 현일(玄鎰, 1807년 ~ 1876년) : 조선의 문신. 자는 만여(萬汝), 호는 교정(皎亭). 연천군수를 지내고, 중추원지사(中樞院知事)에 올랐다.
  • 현찬봉(玄燦鳳, 1861년 ~ 1918년) : 용인군수, 곤산군수
  • 현정경(玄正卿, 1886년 ~ 1941년) : 독립운동가. 대한통의부 법무위원장, 민족해방동맹 주석.
  • 현익철(玄益哲, 1890년 ~ 1938년) : 독립운동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위원, 백범 김구와 회동 중 피격으로 순국.
  • 현천묵(玄天默) : 독립운동가
  • 현상윤(玄相允, 1893년 ~ ?) : 독립운동가. 3·1운동의 주역. 고려대학교 초대 총장.
  • 현정건(玄鼎健, 1893년 ~ 1932년) : 독립운동가
  • 현진건(玄鎭健, 1900년 ~ 1943년) : 소설가, 언론인. 식민지 현실을 바탕으로 사실주의 소설을 쓴 민족 작가.
  • 현제명(玄濟明, 1902년 ~ 1960년) : 음악가
  • 현석호(玄錫虎, 1907년 ∼ 1988년) : 제3·5대 국회의원, 제9·11대 국방부 장관, 제23대 내무부 장관
  • 현승종(玄勝鍾, 1919년 ~ ) : 제24대 국무총리
  • 현동주(玄東柱, 1919년 ~ ) : 가수 현인
  • 현평효(玄平孝, 1920년 ~ ) : 제주대학교 초대 총장
  • 현봉학(玄鳳學, 1922년 ~ 2007년) : 뉴저지주립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6.25 당시 미군통역으로 참전하여 흥남철수 때 피난민 탈출을 위해 미군 포니 대령 설득.
  • 현시학(玄時學, 1924년 ~ 1989년) : 대한민국 함대사령관, 해군사관학교 교장
  • 현영원(玄永源, 1927년 ~ 2006년) : 현대상선 회장
  • 현소환(玄昭煥, 1937년 ~ ) : 연합뉴스 사장,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 현경대(玄敬大, 1939년 ~ ) : 제11·12·14·16대 국회의원
  • 현홍주(玄鴻柱, 1940년 ~ ) : 검사, 제12대 국회의원, 제15대 법제처장, 제14대 미국 대사,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위원
  • 현명관(玄明官, 1941년 ~ ) : 삼성물산 회장, 한국마사회 회장
  • 현기영(玄基榮, 1941년 ~ ) : 소설가,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원장
  • 현승일(玄勝一, 1942년 ~ ) : 제16대 국회의원, 제6대 국민대학교 총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
  • 현승훈(玄承勳, 1942년 ~ ) : 화승그룹 회장
  • 현병철(玄炳哲, 1944년 ~ ) : 한양대학교 법대 교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 현경자(玄慶子, 1947년 ~ ) : 제14대 국회의원
  • 현삼식(玄三植, 1947년 ~ ) : 경기도 양주시장
  • 현재현(玄在賢, 1949년 ~ ) : 동양그룹 회장
  • 현오석(玄旿錫, 1950년 ~ ) : 제4대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 현인택(玄仁澤, 1954년 ~ ) : 제35대 통일부 장관
  • 현정은(玄貞恩, 1955년 ~ ) : 현대그룹 회장
  • 현용진(玄勇鎭, 1955년 ~ ) : KAIST 교수
  • 현기환(玄伎煥, 1959년 ~ ) : 제18대 국회의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현애자(玄愛子, 1962년 ~ ) : 제17대 국회의원
  • 현경병(玄鏡柄, 1962년 ~ ) : 제18대 국회의원
  • 현택환(玄澤煥, 1964년 ~ ) : 서울대학교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 현주엽 : 농구 선수
  • 현재윤 : 야구 선수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