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로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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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로호 사건제1차 아편 전쟁의 결과로 개방된 청나라와 무역이 여의치 않자, 개방을 확대시키기 위해 1856년영국이 벌인 사건이다.

사건[편집]

1856년 10월, 광저우주강(珠江)에 정박하고 있던 중국인 소유의 영국 해적선 애로호에 청나라 관리가 올라가, 청나라 관원에 의하여 승무원 전원이 체포되고 영국 국기가 바다에 던져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애로호는 중국인 소유였으며, 해적선으로 영국 국기를 달았고, 중국인 선원 13명과 영국인 선장 한 명이 있었다. 그러나 체포 당시 선장은 배 안에 없었고 중국인 선원 13명만 체포되었다. 바다의 안전을 위협하는 해적선을 단속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국기를 모욕한 혐의로 배상금과 사과문을 내라고 하였으나 당시의 양광총독(兩廣總督) 엽명침(葉名琛)은 사건 당시 배에 영국 국기가 걸려 있지도 않았고 중국인 소유의 배이므로 영국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할 이유가 없다고 일축했다.

결과[편집]

이를 빌미로 영국과 프랑스는 연합군을 결성하여, 1857년 12월 광저우를 점령하고 양광 총독을 포로로 잡는다. 그리고 본격적인 제2차 아편 전쟁을 벌여, 1858년에 톈진조약을 맺고, 1859년 베이징 조약을 맺어 중국의 조계시대를 열고, 반식민지화를 고착시킨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