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동 갓바위
아산시의 향토문화유산 | |
종목 | 향토문화유산 제18호 (2006년 3월 7일 지정) |
---|---|
수량 | 자연석 3점 |
소유 | 파평윤씨종중 |
위치 | |
주소 | 충청남도 아산시 신인동 141 |
좌표 | 북위 36° 45′ 30″ 동경 126° 58′ 56″ / 북위 36.75833° 동경 126.98222° |
신인동 갓바위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인동에 있다. 2006년 3월 7일 아산시의 향토문화유산 제18호로 지정되었다.[1] 안내석에는 갓쓴바위라고 적혀있다.
현재 갓바위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타리와 문화재 안내판은 2006년 아산시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겨울에 설치하였다.
이름의 유래
[편집]갓바위
[편집]조선시대 선조 때, 좌의정 이항복이 지었다고 한다.[2]
갓쓴바위
[편집]조선시대 토정 이지함이 아산현감 때, 지었다고 한다.[3]
비석 뒷면에 적힌 글
[편집]여기 까치봉 기슭에 우뚝 솟아 우리마을의 수호신이 되어 마을을 지켜주는 갓쓴바위.
조선 초 선조 때, 1592년(백사) 이항복이가 이곳을 시찰 도중 기암괴석인 갓쓴 바위를 보고 갓쓴바위라고 칭하였다한다.
그 후로 우리 마을을 갓바위로 칭하고 있다.
서기 1989년 5월 1일 신인 동민 일동[4]
현황
[편집]갓바위에서 마을에 살고 있던 무당이 1956년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음력 정월 초하루에 고사를 지내다가 무당이 돌아가시고 난 후 고사를 중단하였다.
이 후 마을에서 약 5년 정도 매년 음력 2월 1일 오전 10시쯤 마을 사람들이 호당 거출하여 떡 한시루, 북어, 술, 돼지머리, 삼색실과를 제물로 준비하여 고사를 지냈다. 이 외에도 집집이 각자 부녀자들이 개인적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치성을 드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고사는 마을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 의해 반대가 심하고 고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는 사람이 없어 중단되었다.
마을 사람 중 올해 환갑이 되신 부녀자가 고사를 지낼 때 아들 낳아달라고 빌었는데 얼마 후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아들을 낳은 주민은 현재 마을을 떠나 온양 시내에서 살고 있다.
각주
[편집]- ↑ 아산시 공고 제 2006-338호,《아산시 향토유적 지정공고》, 아산시장, 2006-03-07
- ↑ 김, 철진 (2013년 1월 13일). “아산시 신인동 갓쓴바위(갓바위)전설”. 《뉴스타운》. 주식회사 뉴스타운. 2023년 10월 13일에 확인함.
또 조선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백사 이항복 대감이 이곳을 지나가다 바위 생김이 갓 쓴 사람과 같다하여 ‘갓바위’라고 이름을 지었다는 말도 전해진다.
- ↑ 김, 철진 (2013년 1월 13일). “아산시 신인동 갓쓴바위(갓바위)전설”. 《뉴스타운》. 주식회사 뉴스타운. 2023년 10월 13일에 확인함.
조선시대 토정 이지함 아산 현감이 이곳에 들렀다가 돌아서 있는 전처 형상의 바위를 보고 조강지처를 버리면 돌부처도 돌아않는다는 옛말을 상기시키며 ‘갓쓴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 ↑ 김, 철진 (2013년 1월 13일). “아산시 신인동 갓쓴바위(갓바위)전설”. 《뉴스타운》. 주식회사 뉴스타운. 2023년 10월 13일에 확인함.
기사에 실린 비석 뒷면 사진에 적힌 글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