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암 왕국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이동: 둘러보기, 검색
태국의 역사
ประวัติศาสตร์ไทย
Templo Wat Arun, Bangkok, Tailandia, 2013-08-22, DD 30.jpg
v  d  e  h

이 문서는 태국의 역사에 대해서 서술한다.

선사시대[편집]

동남아시아의 인류 거주사는 50만 년이 넘는다. 최근 이루어진 반 치앙(Ban Chiang) 유적의 고고학 조사 등의 연구에 따르면 BC 4000년에 이미 오늘날의 태국에 초기 청동기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벼농사의 발달은 사회적·정치적 조직화를 촉진시켰다. 이와 같은 연구 결과는 이러한 발달이 이곳에서 중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 지역에 전파되었음을 시사한다.

타이족은 언어학적으로 중국 남부에서 나온 여러 집단과 관련이 있다. 6세기와 7세기에 거쳐 중국 남부에서로부터 동남아시아로 집단 이주가 이루어졌다고 생각된다. 타이족이 남하하기 전에 이 지방에는 선주민인 말레이족, 몬족, 크메르족 등의 문화가 꽃을 피웠다.

수코타이 시대[편집]

아유타야 왕조(1351년 - 1767년)는 현재의 태국 중부를 중심으로 타이족에 의해 세워졌던 왕조로 1351년에서 1767년까지 존재하였다. 아유타야 왕조의 태조는 라마티보디 1세로 태국어로 유통 왕이라 불린다. 수코타이 왕국이 쇠퇴하자 차오프라야 강가에 1350년 새로운 타이 왕국이 세워졌다. 수코타이 왕국 시절에도 태국 북부에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란나타이 왕국이 융성했으며 독립 왕국으로, 또는 버마와 아유타야와 번갈아 가며 동맹을 맺어가며 오랜 기간 동안 존속되다 결국에는 아유타야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아유타야 시대[편집]

아유타야 왕조(1351년 - 1767년)는 현재의 태국 중부를 중심으로 타이족에 의해 세워졌던 왕조로 1351년에서 1767년까지 존재하였다. 아유타야 왕조의 태조는 라마티보디 1세로 태국어로 유통 왕이라 불린다.아유타야 왕국의 첫째 왕 라마티보디 1세는 태국 역사에 두가지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 첫째는 소승 불교를 국교로 제정하고 융성하게 해 힌두교 왕국인 이웃 크메르 제국와 구별되게 한 것이고 둘째는 같은 이름의 힌두교 법률서와 태국의 전통 풍습에 기초해 다르마샤스트라(Dharmashastra)라는 법률을 제정한 것이다. 다르마샤스트라는 19세기까지 태국 법률의 기초가 되었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을 시작으로 아유타야 왕국은 서양과 접촉을 조금 가졌지만 1800년대까지는 이웃하는 나라들과 인도, 중국 등과의 관계가 우선되었다.

차크리 왕조[편집]

4백년 이상 계속된 아유타야 왕국은 1767년 버마의 침략으로 수도가 불타고 6개 부분으로 분열되는 운명을 맞았다. 이때 탁신(Taksin) 장군이 타이 왕국을 재통일하여 톤부리에 새로 수도를 정하고 1769년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러나 전해진 바에 의하면 탁신은 정신 이상자가 되어 톤부리 왕국은 1대로 끝나고 1782년 차크리(Chakri) 장군이 라마 1세로 즉위, 차크리 왕조의 첫째 왕이 되었다. 같은 해 그는 톤부리에서 차오프라야 강 건너편에 있는 방콕에 수도를 건설했다. 라마 1세를 이어 왕이 된 후계자들은 1826년 영국이 이웃 버마에서 승리하면서 유럽의 제국주의의 위협에 갈수록 신경쓰지 않으면 안되었다.

태국은 1826년 영국과 맺은 친선·통상 조약(Treaty of Amity and Commerce)으로 최초로 동남아시아 지역 서양 열강의 등장을 인정했다. 1833년에는 미국과 시암(1939년 이전과 1945년-1949년에 사용되었던 태국의 옛 이름) 간에 외교 관계가 시작되었다. 그 후 몽쿳(라마 4세, 1851년-1868년)와 그의 아들 출라롱콘(라마 5세, 1868년-1910년) 즉위하에서 시암은 서양 열강과 친선 관계를 굳게 다졌다. 태국인들은 이들 왕들의 능력 있는 외교력과 태국 정부의 근대화 개혁 때문에 태국이 남아시아·동남아시아를 통틀어 식민지화 되지 않고 독립을 유지한 유일한 나라로 남을 수 있었다고 여긴다. 이는 태국의 오늘날 국명인 프라텟 타이(1939년-1945년에는 비공식 국명으로 사용, 1949년 5월 11일 공식 국명으로 제정)에서도 볼 수 있는데 프라텟은 '나라', 타이는 '자유로운'이라는 뜻이다.

1909년의 영국-시암 조약은 시암과 영국령 말라야 사이의 국경을 정했는데 이것이 오늘날의 국경이 되었다. 이때 말라야의 토후국 파타니와 케다의 일부였던 파타니(Pattani) 주와 얄라(Yala) 주, 나라티왓(Narathiwat) 주, 사툰(Satun) 주가 태국령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입헌 군주국으로 발전하였다.

관련 항목[편집]

  • 태국의 삼대왕: 역대 군주 중 주목할 만한 업적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로서 대왕의 칭호를 받은 세 군주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