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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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조씨 (淳昌 趙氏)
관향 전라북도 순창군
시조 조자장 (趙子長)
주요 중시조 조인평 (趙仁平)
주요 집성촌 경기도 평택시 서탄면
충청북도 음성군
충청북도 괴산군
주요 인물 조렴, 조유성, 조수익, 조상, 조창현
인구(2015년) 34,069명

순창 조씨(淳昌 趙氏) 는 전라북도 순창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 때 순창호장(淳昌戶長)을 지냈다.

역사[편집]

순창조씨(淳昌趙氏)의 시조 조자장(趙子長)은 고려 때 순창호장(淳昌戶長)을 지냈다. 《순창조씨세보(淳昌趙氏世譜)》에 조자장의 5세손인 조인평(趙仁平)이 1177년(명종 7)에 망이·망소이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일등공신으로 금오위낭장(金吾衛郎將)에 올랐고 후에 대장군(大將軍)에 오르면서 의하면 본관을 순창으로 하였다고 한다.[1]

순창 조씨는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 17명을 배출하였다.

분파[편집]

진위파(振威派), 안촌파(安村派), 문등파(文等派), 삼고파(三顧派), 행정파(杏亭派), 지곡파(池谷派)

본관[편집]

순창(淳昌)은 전라북도 남쪽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이다. 원래 백제의 도실군(道實郡)인데, 757년(신라 경덕왕 16) 순화군(淳化郡)으로 고쳐 적성현(赤城縣)‧구고현(九皐縣)을 영현(領縣)으로 관할하였다. 940년(고려 태종 23) 순창(淳昌:淳州)으로 이름을 고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1018년(현종 9) 남원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가 1175년(명종 5) 감무를 설치함으로써 독립하였다. 1314년(충숙왕 1)에 국사(國師)인 정오선사(丁午禪師)의 고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다. 조선 초에도 순창군(淳昌郡)으로 남원부에 속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남원부에서 독립하였고, 1896년 도제 실시로 전라북도 순창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임실군과 남원군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79년 순창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인물[편집]

  • 조렴(趙廉, 1290년 ~ 1343년) : 1315년(충숙왕 2)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에 이어 밀직부사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 조유성(趙惟誠, 1526년 ~ 1575년) : 1555년(명종 10)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좌랑·정언·헌납·지평·장령 등을 지내고, 외직으로는 장성현감·곤양군수·고부군수·나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 조수익(趙壽益, 1596년 ~ 1674년) : 류성룡(柳成龍)의 외손자. 163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대사성·대사헌·참판·한성부좌윤 등을 역임하였다.

항렬자[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