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환 (양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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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환 蕭歡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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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나라의 황제 | |
| 재위 | (추존) |
| 예장군왕(豫章郡王) | |
| 재위 | 531년 7월 14일 ~ 541년 1월 21일 |
| 즉위식 | 중대통(中大通) 3년 6월 15일 (531년 7월 14일) |
| 이름 | |
| 휘 | 소환(蕭歡) |
| 시호 | 안황제(安皇帝) |
| 신상정보 | |
| 사망일 | 대동(大同) 6년 12월 9일 (541년 1월 21일) |
| 부친 | 소명황제(昭明皇帝) 소통(蕭統) |
| 모친 | 소덕황후(昭德皇后) 채씨(蔡氏) |
| 배우자 | 황태후(皇太后) 왕씨(王氏) |
예장안왕 소환(豫章安王 蕭歡, ? ~ 541년 1월 21일)은 중국 남북조 시대 양나라의 황족이다. 자는 맹손(孟孫)이고, 소명태자 소통의 맏아들이다.
생애
[편집]할아버지 무제로부터 화용현개국공(華容縣開國公)으로 봉해졌다. 동중랑장(東中郎將)과 남서주자사(南徐州刺史)로 임명되었다.
531년에 아버지 소명태자가 죽자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기 위해 건강으로 징소했다. 그러나 소환이 이전에 무제와 소명태자 간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을 원망하고 있었고 또 무제도 그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오히려 셋째 아들인 진안왕 소강이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마침내 한 달 뒤에 소환을 돌려보냈고 이어서 진안왕 소강을 황태자로 세웠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건 옳지 않다고 여겼고 의심하자 마침내 무제가 소환을 황태손으로 삼지 않는 대신에 그의 원래 봉지인 화용현보다 더 큰 땅인 예장군(豫章郡)에 예장군왕(豫章郡王)으로 높여 봉함으로써 불만을 잠재웠다. 또한 운휘장군(雲麾將軍)과 강주자사(江州刺史)로 높여 임명했다.
사후
[편집]죽은 뒤 시호를 예장안왕(豫章安王)으로 하였고, 맏아들인 소동이 습작하여 예장군왕이 되었다. 이후 551년에 소동이 황제로 즉위한 뒤에 소환의 시호를 안황제(安皇帝)로 높여 추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