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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Lhy1576/연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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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편집]

탈피오트(Talpiot)부대는 히브리어로 '최고 중의 최고' 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과학기술분야 전문가 양성 목적의 엘리트 부대이다.

탄생 배경[편집]

욤 키푸르 전쟁[편집]

1973년 10월 6일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유대교의 5,734번째 속죄일이었다. 6일 전쟁(3차 중동전쟁)과 욤 키푸르 전쟁 발발 사이 몇 년 동안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와의 지속전인 소모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무기를 공급하던 많은 나라는 원유 자원을 앞세운 아랍국가의 위협으로 무기 공급을 중단했다. (1967년 전까지 이스라엘 무기 공급의 중심이었던 프랑스도 포함) 비록 미국이 약간의 무기 공급을 지속했으나 결국 이스라엘은 주요 무기 공급원이 없어진 반면, 이집트와 시리아를 포함한 아랍 국가들은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많은 무기를 지원받았다. 소련 또한 부유한 자원을 가졌으며 전 세계 중 가장 위태로운 지역인 이 나라들과의 관계를 견고하게 맺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랍국가 군대에 무기 재보급이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이집트와 시리아는 군대에 새 무기체계를 훈련시키는 군인들을 투입했고 빠르게 전투력을 보강했다. 이 모든 과정은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의 대승으로 인해 현실에 안주하고 있을 시기에 진행되었다. 당시 이스라엘은 시민들과 군 장교들, 정부까지 어떤 전쟁에서도 패할 수 없다고 생각할 만큼 자부심에 취해있었다. 이 자부심은 욤 키푸르 전쟁이 발발함과 동시에 무너졌다. 전쟁 첫날 이스라엘은 전투기 49대를 잃었다. 3차 전쟁 전체 기간에 잃은 것보다 많은 수였다. 욤 키푸르 전쟁이 10월말에 끝나갈 무렵 이스라엘은 공군 전력의 5분의 1을 잃었다.[1]

기초 제안[편집]

히브리대학의 샤울 야치프(Shaul Yatziv)와  펠릭스 도싼(Felix Dothan) 교수가 제안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안이 당시 탈피오트 제도의 기초가 되었다.

1 인간의 창의성이 정점에 이르는 20대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가 만든 적 없는 혁신적인 무기를 만들어 낼 것
2 이스라엘 방위군(IDF), 특히 수리 능력과 사고력 면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고 있는 공군이 프로그램 관련 책임을 직접 맡을 것
3 선발된 간부후보생에게 물리학, 수학 등의 학사학위를 3년으로 단축하여 취득할 수 있도록 할 것[2]

선발방식[편집]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탈피오트 제도를  고등학교 졸업예정자 중 과학 분야 최고의 엘리트 50명을 선정하는 프로그램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들을 선발하기 위해 매년 전체 고교졸업자 중 고등학교 교장, 또는 과학 교사로부터 추천된 1만여 명 이상의 성적 우수자들을 대상으로 1차 심사 및 서류전형을 통해 1,000명으로 압축한 후 필답시험과 면접을 통해 120명을 선발하게 된다. 선발된 인원들은 2일 동안 개인의 인성 및 적성 관련 시험은 물론 팀별 과제해결 시험 등 집단 시험을 포함한 강도 높은 시험을 치르게 되며 이를 통과한 50명 정도가 최종 선발된다.[2]

복무[편집]

탈피오트 후보생이 되면 총 9년을 복무하게 된다.

우선 3년간 히브리대에서 학위 공부를 하는데, 후보생들은 히브리대 재학 중 틈틈이 부대에 파견된다.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군의 문제를 몸소 파악해 더 실전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육 과정을 마치면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의 학사 학위를 받은 이후 6년의 군 생활을 더 한다.[3]

같이 보기[편집]

참고문헌[편집]

  1. 제이슨 게위츠 (2018년 6월 5일). 《이스라엘 탈피오트의 비밀》. 알에이치코리아. 19-32쪽. 
  2. 김도희 (2023년 7월 13일). 《이스라엘 탈피오트 제도와 시사점》 외국 입법`정책 분석 제 38호판. 국회입법조사처. 4-5쪽. 
  3. 천백민 (2022.9. Issue 2 (353호)). “엘리트 군대 경험이 스타트업 창업 밑거름”. 《동아비즈니스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