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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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Vladimiro Ilich Montesinos Torres
페루제대 국가정보부장
임기 1992년 ~ 2000년 9월 29일
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신상정보
국적 페루
출생일 1946년 5월 20일(1946-05-20) (73세)
출생지 페루 아레키파
학력 산마르코스 국립 대학교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스페인어: Vladimiro Montesinos)는 페루의 군인 출신 정치인으로 페루의 국가정보부장[1]을 지낸 인물이다.

아레키파에서 그리스 공산주의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풀네임은 블라디미로 일리치 몬테시노스 토레스(스페인어: Vladimiro Ilich Montesinos Torres)인데, 블라디미로 일리치소련의 공산주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레닌의 이름에서 온 거다. 1965년 파나마의 미군사관학교의 사관후보생으로 졸업했으며, 페루에 귀국한 이후 초리요스의 군사관학교에서 공부했다. 1970년대 후안 벨라스코 군사정권 하에서 군 대위가 되었고, 1973년 당시 총리 겸 군 최고지도자인 에드가르도 메르카도 하린 장군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군에서 명성을 떨쳤으나, 3년 만에 미국에 국가기밀정보를 넘긴 것이 발각되어 불명예 제대하였다.[1] 1977년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978년 석방 후 사촌이자 변호사인 세르히오 카르데날 몬테시노스의 도움을 받으며 일하다가, 동년 4월 리마의 산마르코스 국립대학에 입학하여 사기수단을 통해 3개월 만에 법률 학위를 땄다. 8월 자신의 학위를 갖고 고등법원의 변호사가 되었고, 10일 뒤 리마 변호사 협회의 일원이 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콜롬비아의 마약상과 불법 마약 거래를 하며 악명을 떨쳤고, 결국 에콰도르로 망명했다. 얼마 후 페루로의 귀국이 허락되자 그는 귀국했으며, 이후 1990년 당시 야당 총재였던 알베르토 후지모리를 만나 인연을 맺었고,[1] 이후 후지모리가 당선되자 그는 국가정보부장이 되었다.[1]

이후 후지모리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인물로서[1], 그는 독재적인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1992년 입법부와 행정부의 마찰 과정에서 후지모리가 계엄령을 선포했을 때, 그는 의회 해산 및 법원 봉쇄를 지휘했으며,[1] 1995년 후지모리가 재선에 출마하자 막후 접촉을 통해 야당 후보들의 출마를 막는 공작을 펼치기도 했다.[1] 그는 사법부 및 언론을 철저히 통제하여 "후지모리를 능가하는 막후 권력자"라고 비난받았다.[1] 1996년 페루의 마약 카르텔 두목인 데메트리오 차베스가 코카인 밀반출 묵인을 대가로 그에게 매달 5만 달러씩을 상납했다고 폭로한 이후 마약 조직과의 연루설이 끊임없이 제기됐으나, 절대권력을 이용해 위기를 모면했다.[1] 그러나 이는 자신은물론 후지모리에게도 큰 지장이 되었으며, 2000년 후지모리의 3선 후 야당 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폭로되면서 몰락했다. 이 사건 직후 후지모리에 반대하는 시위가 끊이질 않았고, 결국 후지모리는 의회에서 탄핵됨과 함께 일본으로 망명했다.[1] 몬테시노스 본인도 요트를 이용해 몰래 파나마로 망명했으나[2] 이듬해 베네수엘라에서 체포돼 페루로 송환되었다.[2] 이후 부정부패와 반인권범죄 등의 혐의를 받아 징역 25년 형을 선고받았다.[2] 한편 페루 정부는 그가 갖고 있던 100만달러 상당의 보석을 압수했으며, 2014년 8월 경매되었다.[2]

참고[편집]

  1. 한국일보 (2001년 6월 25일). “[후지모리 오른팔]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2015년 2월 3일에 확인함. 
  2. 이동경 (2014년 7월 27일). “페루, 다이아몬드 400개 박힌 시계 등 경매”. 2015년 2월 3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