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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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 
Encyclopedie de D'Alembert et Diderot - Premiere Page - ENC 1-NA5.jpg
백과전서의 표지
저자 다수의 기여자들, 디드로달랑베르가 편집
언어 프랑스어
주제 일반
장르 참고 문헌 백과사전
출판사 앙드레 르 브르통, Michel-Antoine David, Laurent Durand, Antoine-Claude Briasson

백과전서 혹은 과학, 예술, 기술에 관한 체계적인 사전》(프랑스어: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 , 영어:Encyclopedia, or a systematic dictionary of the sciences, arts, and crafts) 흔히 《백과전서》는 18세기 프랑스의 백과전서파에 의해 만들어진 백과사전이다.

처음에는 1728년에 출간된 이프라임 챔버스의 백과전서프랑스어 번역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드니 디드로가 참여하면서 백과전서는 단순한 지식 전달의 창구가 아니라 전통적인 관념에 도전하는 무기로 변화하게 된다.

제 1권이 1751년에 출판된 이후 1772년까지 35권, 71818개 항목, 3129개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발행되었다. 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케네 등도 집필에 참여하였다. 가장 많은 항목을 쓴 사람은 Louis de Jaucourt으로, 17266개를 작성하였다.

기원[편집]

Fig.2: 백과전서 1772년판 권두화에서 뽑은 그림. 찰스 니콜라스 코친(en:Charles-Nicolas Cochin)이 그렸고 보나벵튀르 루이 프뢰보스가 새겼다. 이 그림은 상징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가운데 진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 밝은 빛이 주위를 감싸고 있다(계몽주의의 중심 상징). 오른 쪽에는 이성과 철학이 있으며, 진리를 감싼 베일을 찢고 있다.(전체 권두화)

출판[편집]

서적상인 앙드레 르 브르통은 디드로에게 체임버스 백과사전(Cyclopaedia, or Universal Dictionary of Arts and Sciences)을 불어본으로 번역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디드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번역의 취지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체임버스 백과사전을 다시 번역하는 것이 그치지 말고, 세상의 모든 새로운 개념, 능동적인 작가, 새로운 지식을 하나의 지붕 아래에 담자고 설득한 것이다.

그의 열정은 서적상들을 자극하였고, 처음보다 더 많은 예산을 만들어내게 했다. 달랑베르는 디드로의 동료가 되기로 하였으며, 정권의 승인을 얻었다. 1750년에 식자층에게 전달된 취지서는 프로젝트의 시작을 알렸으며, 1751년에 첫 번째 권이 출간되었다. 마지막 권이 출간된 것은 1765년이었고 백과전서, 과학-예술-기술의 구조적인 사전의 마지막 권이 독자 손에 쥐여진 것은 1772년이었다.

이 20여 년 동안 디드로는 단지 사전편찬이라는 단조로운 고역만을 감내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끊임없는 정치적 박해에 시달렸고 동지들의 이탈로 고통받아야 했다.

성직자들은 백과전서파의 성장이 자신들의 철학적 입장을 위태롭게 한다고 인식했지만, 백과전서의 구독자가 2천명에서 4천명으로 늘어났을 때 성직자들의 인내심은 폭발하였다. 또한 프랑스 지배 계층도 백과사전파를 달갑지 않게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백과전서는 종교적 관용, 사상의 자유, 과학과 기술의 가치 등에 대해 논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이 민중이라며 백과사전파가 강력히 설파했던 점도 프랑스 지배 계층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덕분에 백과전서는 공개적으로 출판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1759년부터는 공공연하게 탄압받았다. 법적으로 금지되지는 않았지만, 비밀리에 출판되는 수밖에 없었다.

달랑베르는 백과전서 관련 업무들을 도중에 포기하였다. 튀르고를 비롯한 몇몇 인사들도 악평을 받고 있던 백과전서에 대한 기고를 거부했다. 그래서 디드로는 혼자서 수백 편의 글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짧은 글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꽤나 긴 글들이었다. 게다가 다른 기고자들 원고의 고증 작업을 대신하면서 다듬는 도중 시력에 손상을 입기도 하였다. 그는 낮에는 작업장에서 각종 시스템에 대해 익히고, 밤에는 낮에 익힌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식으로 집필을 계속해 나갔다. 실로 미치치 않으면 할 수 없었던 그 작업 사이에도 경찰을 비롯한 각종 사람들로부터 지속적인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

끝이 나지 않을 것 같던 작업이 끝났지만 결국 그의 고행은 빛을 발하지 못했다. 권력의 비위를 건드릴까 두려웠던 출판업자들이 위험성 있는 텍스트 일부를 제거하고 출판했기 때문이다. 쓰라린 20여 년이 남긴 기념비는 이렇게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