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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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cto infobox cinema.png
반딧불이의 묘
火垂るの墓 ()
반딧불이의 묘 포스터.jpg
대한민국 포스터
감독다카하타 이사오
제작노사카 아키유키
각본다카하타 이사오
제작사
개봉일1988년 4월 16일 (1988-04-16) (일본)
1989년 4월 5일 (1989-04-05) (대한민국)
국가일본의 기 일본
언어일본어
반딧불이의 묘
일본어식 한자 표기: 火垂るの墓
가나 표기: ほたるのはか
국립국어원 표준 표기: 호타루노하카
로마자: Hotarunohaka

반딧불이의 묘》(火垂るの墓 (ほたるのはか))는 소설 반딧불이의 무덤을 바탕으로 만든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영화로, 과거전쟁에서 부터 현대인의 문제까지 접근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서의 일본을 그린 1988년 애니메이션이다.

줄거리[편집]

14살 오빠, 4살 여동생.. 오누이는 함께라서 행복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일본의 한 마을에 폭격기로 인한 대공습이 일어난다. 마을이 화염으로 휩싸이자, 14살인 세이타는 부모님과 따로 만나기로 약속한 채 4살짜리 여동생 세쓰코를 업고 피신한다. 결국, 집과 어머니를 잃고 먼 친척아주머니의 집으로 향하는 세이타와 세쓰코. 힘들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오빠 세이타는 천진하고 착한 여동생 세쓰코를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친척아주머니의 남매에 대한 냉대는 더욱 심해지고, 세이타는 어머니가 남겨주었던 마지막 여비를 챙겨 세쓰코와 함께 산속에 있는 방공호로 거처를 옮긴다. 두 남매는 산속 동굴에서 반딧불이를 잡아 불을 밝히고, 물고기와 개구리를 잡아먹으며 살아가는데..[1]

등장인물[편집]

감독의 의도[편집]

다카하타 이사오는 이 작품에 대하여 "반전 아니메 따위가 절대 아니다. 그런 류의 메시지는 일절 포함하지 않았다." 되풀이해 말하고 있지만("결코 단순한 반전영화 따위가 아니요, 최루성의 불쌍한 전쟁 희생자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전쟁의 시대를 살아간 극히 평범한 어린이가 걸은 비극의 이야기를 그렸다."고도 함[2]), 실상 반전 아니메로서 받아들여져 있음에는 할수없는 일이라고 말하였다. 또한 본인은 이 영화를 심중물로서 표현하고 있으며 "전쟁의 비참함을 끌어낸다라고 하면 좀더 극단적이지 않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했다.[3] 다카하타는 또한 2인 형제가 닫힌 가정생활의 구축에는 성공했지만, 주의의 사람들과 공생을 거절하여 사회생활에 실패해 버린 모습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도 통하는 것이라고 해설하며, 특히 고교생부터 20대까지의 젊은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한다고 했다.[4][5] 아울러 "당시는 몹시도 억압적이던, 사회생활에서도 최저최악의 '전체주의'가 옳다고 받아들여진 시대. 세이타는 그런 전체주의의 시대에 저항하여 세쓰코와 둘만의 '순수한 가족'을 만들려고 하지만, 그런 것이 가능한가, 가능하지 않으니까 세이타는 세쓰코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다. 다만 우리들이 과연 이를 비판할 수 있는가. 우리 현대인이 심정적으로 세이타에 공감하게끔 된 것은 시대가 역전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또 시대가 재역전한다면, 저 미망인(친척 아주머니) 이상 세이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대세를 점할지 모르게 되니까, 나는 섬찟한 기분이 듭니다."고 말하였다.[6]

각주[편집]

  1. 반딧불이의 묘 줄거리. “반딧불이의 묘”. 한국영화 데이터베이스. 
  2. 『スタジオジブリ作品関連資料集II』スタジオジブリ
  3. 朝日新聞デジタル -『空襲の経験、きちんと映画に 「火垂るの墓」高畑勲監督 』2015年8月12日17時09分掲載インタビュー
  4. 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に掲載インタビュー
  5. 高畑勲『映画を作りながら考えたこと』(徳間書店、1991年)471頁。
  6. 《アニメージュ1988年5月号》. 徳間書店. 1988년 5월 10일.  다음 글자 무시됨: ‘和書 ’ (도움말)

외부 링크[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