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정기

민족정기(民族精氣, 民族正氣)는, 사전적 의미로는 "한 민족의 공통 의지로서 바르고 큰 기풍"을 뜻한다.

김종성에 따르면 "한 민족이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영위하는 가운데 갖게 된 민족의 원형적 기질 또는 정수로서의 정신"이며, 황선희에 따르면 "고대 이래 외세의 침입이나 내부적 혼란이 있을 때마다 애국적·저항적·투쟁적 민족의 원동력으로 발휘"된 "정의로운 정신적 잠재능력"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반적 용어로서만 아니라 행정용어로서도(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 사용된다.

어원

민족정기는 말 그대로 민족과 정기의 조어이다. 민족이 붙은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근대에 조어되었다.

정기는 동양사회에서 오랫동안 쓰여온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서 정기(正氣)는 1) 만물의 근원이 되는 기운, 지공·지대·지정한 천지의 원기 2) 공명정대한 기운, 바른 기운 따위로 풀이된다. 김종성은 정기를 "분출하는 원초적 에너지로서 기가 바름[正] 또는 옳음[義]이라는 가치정향의 관념을 만나 바름이나 옳음을 지향하는 기 또는 바른 기가 된" 것이라고 본다.

한말의 독립지사들이 공동체의 혼 또는 정신이라는 뜻의 독일어 Volksgeist에서 착안하여 사용한 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 한편, 일본의 야마토다마시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국혼(박은식), 낭가사상(신채호), 조선의 얼(정인보), 조선심(문일평) 따위는 모두 민족정기의 다른 말로 간주된다.

용례

민족정기라는 말이 처음으로 문서상에 등장한 것은 1941년 11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채택한 대한민국건국강령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래로 공통한 말과 글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통한 민족정기(民族正氣)를 길러온 우리끼리로써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조직임.

— 대한민국건국강령

이후 이른바 친일파 청산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쓰였으나, 공산주의가 민족정기를 위협한다는 논리에서 반공의 논리로도 쓰였다. 이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것은 군사독재시대로, 특히 박정희는 첫 대통령 취임사에서 "5월혁명으로 부패와 부정을 배격함으로써 민족정기를 되찾아 오늘 여기에 우람한 새 공화국을 건설했다"고 하는 등 이 말을 애용하였다.

1984년 대한민국의 산악동호회 '우리를 생각하는 모임', '오르내림산우회' 등에서 쇠말뚝 괴담에 입각하여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일제가 박아놓았다는 쇠말뚝을 뽑아 독립기념관에 기증하는 운동을 시작했다.

김영삼 정부는 취임식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어떤 이념이나 어떤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 한다"고 선언, 광복 50주년에 즈음하여 '민족정기 회복'을 위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사업을 벌였다(역사바로세우기). 역대 대통령 집무실인 청와대 옛 본관 철거, 국립중앙박물관 철거, 쇠말뚝 제거, 국민학교의 초등학교로의 개칭, 임정요인 유해봉환, 독립유공자 확대, 중국의 임정청사복원 등 수많은 사업이 민족정기 회복 이름 아래 이루어졌다.

2020년 대한민국의 작가 조정래는 "반민특위는 반드시 민족정기를 위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부활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150만, 60만 하는 친일파들을 전부 단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에 유학을 갔다 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돼 버립니다. 민족 반역자가 됩니다"라고 주장하여 물의를 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