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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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의 눈물〉은 일제 강점기1935년 이난영이 처음 부른 뒤 오랫동안 애창되고 있는 한국트로트 곡이다.

역사[편집]

작사자는 문일석, 작곡자는 손목인이다. 와세다 대학 출신의 20대 무명 시인이었던 문일석은 1935년 조선일보오케레코드와 함께 향토 신민요 노랫말을 공모하자 〈목포의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응모하여 1등에 당선되었다. 흥행의 귀재로 불렸던 오케레코드의 사장 이철이 제목을 〈목포의 눈물〉로 바꾸어서 가지고 오면서 남인수가 취입하려 했던 갈매기 우는 항구 라는 곡에다 당선되어 "본인이 제목을 바꾼 가사(목포의 사랑)를 붙이면 어떨까?" 하여서 작곡가 손목인의 곡을 입혀 취입을 해서 대히트를 기록했다.

가수는 목포 출신의 신인으로 당시 나이 십대 후반이었던 이난영이었다. 이난영 특유의 비음과 흐느끼는 듯한 창법에는 남도 판소리 가락과 같은 한이 스며 있다는 평이 있었다. 결국 이 노래는 이난영의 대표곡이 되었고 이난영의 또다른 노래 목포는 항구다와 함께 목포를 대표하는 향토색 짙은 곡으로 남았다. '목포의 애국가'로까지 불리기도 하고, 목포 출신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김대중의 애창곡이기도 했다. 또한 호남 지역을 연고로 했던 프로 야구팀 해태 타이거즈의 응원가로서도 잘 알려져 있다.[1]

노래의 가사와 곡조는 매우 애잔하여 목포항을 배경으로 이별의 끝없는 아픔과 서러움을 그리고 있다. 깊은 한과 울분이 숨겨진 〈목포의 눈물〉은 나라 잃은 슬픔을 달래주는 상징적인 곡이었기에 국민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었다는 해석이 있다. '한국가요사에서 불후의 명작'이라는 찬사가 있을 만큼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노래비[편집]

이 노래에는 삼학도, 유달산, 노적봉 등 목포의 지명이 나오는데, 이 중 노적봉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에 대한 전설이 깃든 곳이다. 유달산 입구에 노랫말을 적은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외부 링크[편집]

참고자료[편집]

각주[편집]

  1. “新 응원 문화 보고서 - 응원도 한류다”. 한국방송. 2006년 6월 11일. 2008년 2월 6일에 확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