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스 촘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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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스 촘베

모이스 카펜다 촘베 (Moïse Kapenda Tshombe, 1919년 11월 10일 ~ 1969년 6월 29일) 는 콩고 민주 공화국의 정치인이고 카탕가 주의 분리 독립을 주도하여 콩고 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모이스 카펜다 촘베는 벨기에령 콩고의 무숨바(Musumba) 에서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기독교 신학교에서 교육받았다. 1950년대에 콩고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히 진행되면서 무농고[Godefroid Munongo]와 1958년에 카탕가부족연합회[Confédération des associations tribales du Katanga, CONAKAT]를 결성하였다.

카탕가부족연합회는 1960년에 열린 선거로 카탕가 주의 실권을 장악했고 같은 해 콩고가 독립하면서 카탕가의 풍부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발언력을 유지하려는 모이스 카펜다 촘베와 대통령 조제프 카사부부와 총리 파트리스 루뭄바와의 대립이 곧바로 표면화해 모이스 카펜다 촘베와 카탕가부족연합회는 카탕가 주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 선언이 발단이 되어 콩고가 내분하는 양상이 나타나 콩고 위기가 일어났다.

기독교도이자 반공주의자였던 모이스 카펜다 촘베는 과거에 콩고를 지배했던 벨기에를 시작으로 서방 여러 국가에서 지원받았고 벨기에는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카탕가에 군을 진주하게 해 모이스 카펜다 촘베를 지지했다. 카탕가는 2년간 독립을 유지했지만, 1962년 말에 국제연합군이 카탕가를 점령해 모이스 카펜다 촘베는 처음에는 북로디지아로 망명했고 그 뒤에는 스페인으로 망명하였다.

콩고 위기 후인 1964년에 모이스 카펜다 촘베는 콩고 행정부와 화해해 대통령 조제프 카사부부를 중심으로 수상에 올랐지만, 대통령 조세프 카사부부와의 재대립이 심화해 행정부 기능이 마비되는 중 1965년 조제프 모부투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스페인으로 다시 망명하였다.

1967년 6월 30일에는 모이스 카펜다 촘베가 탑승한 비행기가 알제리에서 납치되었고 모이스 카펜다 촘베는 알제리에서 감금된 채로 1969년 6월 29일 심부전으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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