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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1세 폰 바이에른 선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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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밀리안 1세
요하임 폰 잔드라르트의 초상 (1643년작)
요하임 폰 잔드라르트의 초상 (1643년작)
바이에른 공작
재위 1597년 10월 15일  1623년 2월 25일
전임 빌헬름 5세
바이에른 선제후
재위 1623년 2월 25일  1651년 9월 27일
후임 페르디난트 마리아
팔츠 선제후
전임 프리드리히 5세
후임 카틀 1세 루트비히
신상정보
출생일 1573년 4월 17일
출생지 신성 로마 제국 바이에른 공국 뮌헨
사망일 1651년 9월 27일(1651-09-27)(78세)
사망지 신성 로마 제국 바이에른 선제후국 잉골슈타트
가문 비텔스바흐가
부친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5세
모친 로렌의 르네
배우자
    로렌의 엘리자베트
    (결혼: 1595, 사별 :1635년)
      자녀 바이에른 선제후 페르디난트 마리아
      공작 막시밀리안 필립 히에로니무스
      종교 천주교
      묘소 뮌헨 성 미카엘 성당
      서명


      막시밀리안 1세(Maximilian I, 1573년 ~ 1651년)는 바이에른 공작(Herzog von Bayern, 1597년 ~ 1651년)이자 바이에른 선제후(Elector of Bayern, 1623년 ~ 1651년)이다.

      1597년 바이에른 공국을 계승하였다. 이후 독일에 있어서의 반종교개혁 운동의 선두에 서고 1609년 프로테스탄트 제후동맹에 대항해서 가톨릭 제후연맹을 결성하여, 그 지도자가 되었다.

      30년전쟁 발발(1618) 후,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도와 1620년 바이센베르크 싸움에서 궁정백 프리드리히 5세에게 인솔된 반란군을 격파하고, 1623년 팔츠 선제후의 자리와 오버팔츠를 획득하였다. 황제가 발렌슈타인을 기용한 후는, 황제권력의 강대화를 두려워하여 1630년 황제에게 압력을 가하여 그를 파면시키고 자신의 지도적 지위 회복을 기도하였다. 스웨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불리한 형세에 놓이자, 1647년 울름에서 단독으로 강화하였다.

      참고 자료

      [편집]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외부 링크

      [편집]
      전임
      창설
      바이에른 선제후
      1623년 - 1651년
      후임
      페르디난트 마리아
      전임
      프리드리히 5세
      팔츠 선제후
      1623년 - 1648년
      후임
      카를 1세 루트비히
      전임
      빌헬름 5세
      바이에른 공작
      1597년 - 1623년
      후임
      선제후로 승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