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르카 왕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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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요르카 왕국
Regne de Mallorca (카탈루냐어)
Reino de Mallorca (스페인어)
Regnum Maioricae (라틴어)

1231년1715년
문장
문장
Crown of majorca.jpg
수도 팔마, 페르피냥
정치
정부 형태 군주제
역사
 • 건국 1231년
 • 누에바 플란타 칙령 1715년

기타
국교 로마 가톨릭교회
이슬람교
유대교
현재 국가 스페인의 기 스페인
프랑스의 기 프랑스

마요르카 왕국(카탈루냐어: Regne de Mallorca, 스페인어: Reino de Mallorca, 라틴어: Regnum Maioricae)은 정복왕 차이메라고도 알려진 차이메 1세(마요르카 초대왕 하우메 1세)가 세웠다. 그의 첫째 아들 알리폰소가 사망한 후, 1262년에 쓰여진 유언장에서 그의 아들 차이메에게 마요르카 왕국을 만들어 주라고 하였다. 이 분배는 그의 통치기간 동안에 유지되었고 하우메 1세가 1276년에 사망하자, 아라곤 왕국페로 대왕이나 페로 3세라고도 알려진 그의 장남 페로에게 넘어가게 되었고 마요르카 왕국은 하우메 2세 데 마요르카라는 이름으로 통치한 차이메(아라곤식 이름)에게 넘겨졌다. 1279년 이후, 페로 3세는 마요르카의 왕을 아라곤의 왕의 봉신으로 두었다. 마요르카의 군주라는 작위는 1715년 누에바 플란타 칙령으로 사라질때까지 아라곤과 스페인의 군주들이 계속 사용하였다.

지리[편집]

마요르카 왕국에는 발레아스 제도: 마요르카, 메노르카 (1231년까지 이슬람교도들의 지배를 받다가 하이메 1세에게 항복하였다), 이비사, 포르멘테라가 포함된다. 마요르카의 국왕은 또한 루시용, 세르다냐 백작령들의 영주였고 하이메 1세는 옥시타니아 지역의 몽펠리에 영주령, 오베르뉴 지역의 카를라 후작령, 몽펠리에 인접 지역인 오믈라스 남작령을 유지했다.

역사[편집]

아라곤 겸 마요르카왕 차이메 1세(하우메 1세)의 업적은 두 강국인 프랑스카페 왕조와 아라곤 왕국 사이에 있었던 당시에 잦은 분쟁 지역인곳을 포함한 지중해의 전략적 고립 영토를 만들어냈던 것이 포함됐었다. 마요르카 왕국의 허약함을 인지한 하이메 1세는 새로운 왕국을 통합시켜내기 위해 세르다냐 정복에 착수했다. 그는 또한 사보이아 백작 아메데오의 딸 베아트리체에게 그의 아들 하이메를 혼인시키려 협상에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두 계획 어느것도 성공하지는 못 했다.

차이메 1세가 사망하고 나서, 새로운 마요르카의 왕인 하우메 2세는 아라곤왕 페로 3세에게 공물을 받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1279년까지 왕국내 여러 문제에 사로잡할때까지 마요르카의 군주는 그의 나라가 아라곤의 군주의 신하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결과로 마요르카 왕국은 의회를 열 수 가 없었고, 마요르카의 국왕은 아라곤의 군주를 향한 공물을 카탈루냐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1279년 페르피냥 조약으로, 아라곤 왕국과 마요르카 왕국 사이의 분균형이 생겨났다. 아라곤의 왕은 차이메 1세의 유언을 어기고 아라곤 왕국의 하나된 관할권을 재확립하여 마요르카 왕국에 대한 아라곤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권을 유지했다. 이 조약은 마요르카 왕국과 아라공 왕관 사이의 관계를 형성하였다. 의회의 부재는 이미 붕괴 직전의 왕국의 불안전성을 심화시켰고, 게다가 공공 기관 역시도 부재였다.

아라곤 성전 기간, 마요르카왕 하우메 2세는 아라곤왕 페로 3세에 맞서 교황, 프랑스와 동맹을 맺었다. 이에 따른 결과로 페로의 후임자 아라곤왕 알리폰소 3세는 1286년에 아라곤 왕국을 정복하여 마요르카의 알폰스 1세를 겸하였다. 그러나 1295년 아나니 조약으로 아라곤왕 차이메 2세은 하우메 데 마요르카에게 발레아스 제도를 되돌려줘야만 했다.

1324년에 마요르카왕 하우메 2세의 아들 마요르카왕 산스 1세(페란 데 마요르카 왕자의 아들)가 사망하자, 산스의 조카 하우메 3세가 9세의 나이에 마요르카의 왕위에 올랐고, 왕국을 관리하기 위해 그의 숙부 펠립 데 마요르카(Felip de Mallorca)을 수장으로 한 섭정 의회가 들어섰다. 상황은 아라곤왕 차이메 2세가 마요르카 왕위에 대한 그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으며 더욱 어려워졌다. 1325년 펠립은 사르데냐를 침공하면서 산스가 만든 엄청난 빚을 상환한 후 아라곤 왕에 의한 마요르카 왕위 계승권 주장에서 지켜냈다. 계승 문제를 해결하는 동안, 마요르카 왕국은 급격한 경제 위기에 쳐한다.

하우메 3세는 아라곤 왕국과 유사하도록 정책 진행을 강요받았다. 그로 인해서 그는 제노바와의 전쟁 (1329년-1336년)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고, 마요르카 왕국을 위한 여러 경제적 시장을 상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어쩔수 없이 다시 유대인 지역 사회에 대한 새로운 세금과 벌금을 부과했으나 이는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는데는 불충분했다. 마요르카 왕국의 문제는 1341년부터 아라곤왕 페로 4세이 침략 준비를 위해 모든 관계를 끊으면서 끝이 없는거처럼 보였다. 1343년 5월, 페로 4세는 발레아레스 제도를 공격했고 그 다음에는 1344년에 루시용세르다냐 백작령들을 공격했다. 하우메 3세는 프랑스 지역의 영토만을 보존할 수 있었다. 1349년에 이 영토들을 프랑스의 국왕에게 매각하고, 하우메 3세는 마요르카로 떠났다. 그는 1349년 10월 25일 류크마조르 전투에서 패배하고 전사했다. 그리하여 마요르카 왕국은 아라곤 연합왕국에 합병되어 페로 4세는 마요르카의 페란 1세로도 불리게 된다.

마요르카 왕국의 멸망[편집]

마요르카 왕국의 소멸은 프랑스 왕국잉글랜드 왕국 사이에 벌어진 백년 전쟁,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연합왕국이 개입된 마린 왕조와의 전쟁과 더불어 발레아레스 제도에 위성국을 세우려던 제노바의 시도등의 영향으로 불가피하였다. 프랑스 (몽펠리에를 통해서)와 아라곤의 군주들과 봉신으로서 연결되어 있던 마요르카 왕국은 이 분쟁에서 중립 상태로 남을 수가 없었다. 추가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려드면서 인상된 세금을 왕국의 경제에 투자하면서 왕국의 사람들이 동요하기도 했다.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A Mediterranean emporium - The Catalan kingdom of Majorca, by David Abulafia, ISBN 0-521-89405-0
  • Abulafia, David. The Western Mediterranean Kingdoms, 1200-1500. 1997. ISBN 0-582-078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