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봉환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둘러보기로 가기 검색하러 가기

대정봉환(일본어: 大政奉還 타이세이호칸[*])은 1867년 11월 9일 도쿠가와 막부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메이지 천황에게 통치권을 반납하는 것을 선언한 정치적 사건이다.

개요[편집]

에도 시대 도쿠가와 막부는 일본의 통치자로 군림하고 있었지만, 형식적으로는 조정으로부터 장군에게 선지를 내려 막부 정치의 대권을 천황으로부터 위임받고 있다는 ‘대정위임론’(大政委任論, 대정=정권)이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에도 막부 말기, 조정이 자립적인 정치 세력으로 급부상했고, 주로 대외 문제에 있어서 막부의 뜻과 일치하지 않음으로 인해 막부 권력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가운데, 막부는 조정에 대정위임의 재확인을 요구했다. 분큐 3년 1863년 3월부터 다음 해인 1864년 겐지 원년 4월에 각각 일정한 유보 하에 대정위임의 재확인이 이뤄졌고, 그때까지 관례에 불과했던 대정위임론이 실질화, 제도화가 되었다.

1867년 게이오 3년 10월 도쿠가와 요시노부에 의한 대정봉환은 그때의 조정과 막부의 협상에 의해 재확인되었다. 이것은 ‘대정’(정권)을 조정에 반납하는 것이었으며, 에도 막부의 붕괴를 상징하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요시노부는 정이대장군 직을 사직하지 않았고, 제번에 대한 군권을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요시노부는 10월 24일에 장군직 사직도 조정에 건의했지만, 사직이 공인되어 막부의 폐지가 공식적으로 선언된 것은 음력 12월 9일왕정복고 대호령에서였다.

대정봉환의 목적은 내전을 피하고, 막부의 독재를 막아 도쿠가와 종가를 필두로 하는 제후들에 의한 ‘공의 정권 체제’(公議政体論)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정봉환 이후 예정된 제후 회동이 이뤄지지 않는 사이에, 사쓰마 번을 핵심으로 하는 막부토벌파(토막파)에 의한 조정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과정[편집]

공무합체와 대정봉환론[편집]

막부 말기 개국과 통상 조약 체결 문제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면서, 막부와 조정 간의 의견불일치 형태로 표면화되었다. 1858년 안세이 5년에 ‘무오의 밀칙’(무오년의 비밀칙령)이 막부를 통하지 않고 미토 번에 직접 내려진 것을 시작으로 마침내 조정이 막부의 정치 개혁과 양이의 실행을 요구하는 등의 사태에 직면했다. 막부는 ‘조정과 막부의 일치’, 즉 공무합체의 일환으로 ‘대정위임’(大政委任)을 재확인하고, 제도화시킬 것을 조정에 요구하게 되었다. 궁극적으로는 ‘막부의 명령’이 곧 ‘조정의 명령’이 되는 정령일로(政令一途)가 되어 막부 권력의 재강화를 겨냥한 것이었다.

한편, 마쓰다이라 슌가쿠의 요청을 받아 에치젠 번의 개혁을 단행한 요코이 쇼난오쿠보 이치오, 카쓰 가이슈 등의 개화적인 막부 신료들은 대정봉환론(大政奉還論, 또는 大政返上論)을 일찍부터 주창했다. 그러나 막부는 조정의 양이 요구와 타협하면서도, 어디까지나 ‘공무합체’를 추진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현실화시킬 수 없었다.

도사 번의 대정봉환 건의[편집]

내용[편집]

대정봉환 그림, 무라타 탄료

막부는 국가의 모든 정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들어 막부의 전제 정치를 비판하는 개혁 여론이 높아졌고, 1867년 서남 지역의 사쓰마 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 번(현 야마구치현)은 막부 타도를 위한 동맹을 결성했다. 도사 번의 번주 야마우치 요도는 도사 번 출신 사무라이 사카모토 료마에게 대정봉환을 직소할 것을 권유 받았고, 이를 수렴해 막부 타도 세력을 견제하여 신 정권을 수립하고자 에도 막부 제15대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에게 “천황에게 국가 통치권을 돌려주라”고 권고하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힘이 약해진 쇼군은 국가 통치권을 돌려준 뒤에도 새로운 정치체제 아래서 권력을 장악해 실질적인 통치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방안을 수용했다. 그리하여 11월 10일 천황에게 통치권 반환을 신청했고, 그 다음날 천황이 이를 허가했다. 이에 따라 교토에서 제후 회의를 열기로 했으나 무산됐다. 그 사이에 막부를 타도하려고 동맹을 맺은 반막부 체제 세력들은 막부 정권을 물리치고 대정봉환에 성공했고, 1868년 1월 3일왕정복고와 함께 일본제국의 수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1868년 5월 3일, 에도는 일본제국군의 손에 떨어 지게 되었으며, 도쿠가와 막부는 결국 붕괴되고 말았다.

참고[편집]

"메이지 N년"은, 일본제국이 성립된 서기 1868년을 1년으로 하고 있지만, 대정봉환이 일어난 서기 1867년은 "메이지 0년"에 해당한다. 즉, "메이지 N년"은 "대정봉환으로 N년 후"를 의미하고 있다.

제국 시대에는 천황에 대한 이벤트는 11월 10일 실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쇼와 천황의 즉위식 (1928년)와 황기 2600년 기념식 (1940년)은 모두 11월 10일에 개최되었다. 이것은 대정봉환 다음날 맞는 11월 10일에 연관되어있다.

같이 보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