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주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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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주
출생 1905년 9월 25일(1905-09-25)
대한제국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 미상리
사망 1950년 6월 23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대동군 사동탄광
국적 대한제국(1905~1910)
일제 강점기(1910~1945)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1948~1950)
종교 개신교(장로교)

김관주(金冠柱, 1905년 9월 25일-1950년 6월 23일)는 한국의 목회자이며 순교자이다. 평안남도 안주군 안주면 미상리(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남도 안주시 미상동)에서 아버지 김현하와 어머니 김정숙의 장남으로 태어났다.[1] 일본으로 가서 법학 공부를 하다가 동경신학교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후 한경직 목사의 초청으로 1938년부터 신의주 제이교회에서 부목사로 시작하여 후에 담임목회 사역을 9년 동안하였고 1947년 평양 서문밖교회로 옮겨 목회를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하여 감옥에 투옥되었다가 일제가 패망하면서 석방되었다. 그러나 이후 38선 이북에 들어선 공산 정권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소련이 참여하는 정치에 협조할 것을 강요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자 압력이 가해졌다. 그는 오히려 조만식 장로가 이끄는 기독교 민주당을 결성하는데 참여했다. 공산 정권은 결국 협조하지 않는 그를 1947년 11월 18일 평양에서 체포해 평양 외곽에 있는 사동 탄광으로 데려가서 강제 노역을 하도록 처리했고, 그는 1950년 6월 23일경에 순교하였다.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김명혁 교수의[2] 부친이다.

학력 및 경력[편집]

  1. 숭실 전문학교
  2. 동지사대학
  3. 일본신학교(동경신학대학교 전신)
  4. 신의주 제이교회 시무
  5. 평양 서문밖교회 시무 

참고문헌[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