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메이 마사노리
가메이 마사노리(일본어: 亀井政矩 かめい まさのり[*], 덴쇼 18년 음력 11월 29일(1590년 12월 25일) ~ 쇼와 5년 음력 8월 15일(1619년 9월 22일))는 에도 시대 전기의 다이묘이다. 이나바 시카노번 제2대 번주, 이와미 쓰와노번 초대 번주를 지냈다. 쓰와노번 가메이가(津和野藩亀井家) 제2대 당주.
생애[편집]
게이초 7년(1602년), 처음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다. 게이초 9년(1604년)에는 부젠마모루(豊前守)의 관위가 오르고, 도쿠가와 히데타다의 근습이 되었다. 게이초 14년(1609년)에 마쓰다이라 야스시게의 딸과 결혼했고, 게이초 17년(1612년) 아버지가 병사하자 그 뒤를 이어 가노번주가 되었다.
게이초 19년(1614년)부터의 오사카 전투(大坂の陣)에서는 혼다 마사노부 휘하의 군에 속했다. 겐나 3년(1617년), 이시미즈와노번주였던 사카자키 나오모리가 흉행을 위해 개역하자 그 뒤를 이어 쓰와노 이봉 명령을 받았다. 겐나 5년(1619년) 5월 후쿠시마 마사노리가 히로시마성의 무단 개축으로 개역이 되자 호리오 다다하루, 모리 다다마사 등과 함께 성을 주고받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나 마사노리는 이 무렵부터 병중(病中)에 있었다.
동년 8월, 친했던 고다이인을 만나기 위해서 조라쿠도조(上洛途上)[1]의 후시미에서 낙마(落馬)해, 이것이 원인이 되어 8월 15일에 30세로 사망했다. 뒤는 장남 고레마사가 이었다.
또한, 마사노리에는 하리마히메지번으로 가증 이봉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요절했기 때문에 실현되지 못하고 끝났다.
각주[편집]
- ↑ 상락도상
외부 링크[편집]
- “"가메이 고레노리 사후 400주년 기념사업". 2019년 6월 5일 열람 돗토리현 가노정(亀井茲矩公没後400年記念事業)”. 2019년 6월 5일에 확인함.
전임 가메이 고레노리 |
제2대 시카노번 번주 (가메이가) 1612년 ~ 1617년 |
후임 이나바 돗토리번으로 병합 (이케다 데루즈미) |
전임 사카자키 나오모리 |
제1대 쓰와노번 번주 (가메이가) 1617년 ~ 1619년 |
후임 가메이 고레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