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크리스토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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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마이너 크리스토퍼
Warren Minor Christopher
출생1925년 10월 27일
사망2011년 3월 18일(2011-03-18)(85세)
LA 자택에서 사망
거주지카핀테리아
성별남성
학력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B.A.)
스탠퍼드 법학대학원 (J.D.)
직업변호사, 외교관, 공무원
정당민주당
종교감리교
배우자마리 윌리스
서명

워런 마이너 크리스토퍼(Warren Minor Christopher, 1925년 10월 27일 ~ 2011년 3월 18일)는 미국인 정치인, 62대 국무 장관이다.

노스다코타 주 스크랜턴에서 태어나 남가주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법무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정부의 일을 하지 않을 때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변호사 개업을 하였다.

1967년부터 1969년까지 린든 B. 존슨 대통령 아래에서 법무부 부장관으로 있으면서, 시카고디트로이트에서 흑인들이 폭동을 일으킨 사건에 치안을 회복하는 연방적 성과를 처리하였다.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지미 카터 대통령 정부의 국무부 부장관을 지내면서, 이란의 미국 대사관 인질 석방을 위한 최고 협상자로 활약하였다.

1991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경찰들이 소수 민족들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조사하는 임무를 지휘하였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빌 클린턴 대통령 아래에서 국무 장관이 되어, 보스니아 내란의 분쟁을 가라앉히는 협상을 하였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제1차 북핵위기, 제네바 북핵 협상, 북한의 강릉 잠수정 침투사건 등 한반도 현안에 대한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화를 강조해온 크리스토퍼 장관은 제네바 협상을 지휘했으며 당시 한국 김영삼 정부와 클린턴 정부의 한미 공조 외교의 중심에 있었다. 1996년 8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발생 직후 크리스토퍼 장관은 “모든 당사자의 추가도발 금지촉구”라는 남북 쌍방의 군사 행동 자제 요청 발언으로 대북 강경노선을 주장하던 한국 정부와 한국민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0년에는 플로리다 주에서 재계표 업저버로서 앨 고어의 대통령 선거 운동을 대표하였다. 신장암등으로 투병하다가 2011년 3월 18일(현지시각)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전임
로렌스 이글버거
미국의 63대 국무장관
1993년~1997년
후임
매들린 올브라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