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S-51-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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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S-51-L
임무 휘장
STS-51-L.svg
임무 통계
임무 이름 STS-51-L
우주왕복선 챌린저 우주왕복선
발사대 LC-39A
발사 날짜 1986년 1월 26일 UTC 16:38:00
착륙 계획: 1986년 2월 3일 실제: 착륙하지 않음
임무 기간 계획: 6일 34분 실제: 73.124초
이동 거리 29km
승무원 사진
Challenger flight 51-l crew.jpg
관련 임무
이전 임무 이후 임무
STS-61-C STS-61-C STS-26 STS-26
외부연료탱크의 폭발 직후. 보조추진로켓은 분리되어 불규칙적으로 날아가고 있다. 연료탱크의 폭발로 발생된 연기 내에서는 챌린저호 본체가 압력에 의해 분해되었다.

STS-51-L우주왕복선의 제 25번째 임무였으며, 챌린저 우주왕복선의 10번째 임무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발사 73.124초 이후 공중분해하여 챌린저 호는 붕괴하고 챌린저 호의 마지막 임무가 되었다. 이 사고로 탑승하고 있던 승무원 7명 전원이 사망하는 인명피해와 4865억원의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1]

탑승한 우주비행사[편집]

괄호 속 숫자는 순서대로 사망 당시 나이와 사고 자체를 포함한 우주 비행 횟수이다.

STS-51-L 미션의 목표[편집]

  • TDRS-B 인공위성의 궤도 투입 - 주목적
  • 핼리 혜성의 관측 - 맥네어가 수행할 예정이었다.
  • Teacher in Space 계획의 실행 - 제목 그대로 우주에서 원격으로 학교 강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맥컬리프가 수행할 예정이었다.
  • 기타 과학 실험
  • 우주에서의 색소폰 연주 - 정식 목적은 아니며, 맥네어와 그와 사적인 친분이 있는 작곡가 자르와의 공동작업이었다.

사고의 경과[편집]

  • 발사 전
    • 처음 예정은 1월 22일이었으나 다른 발사(STS-61-C)로 인해 23일로, 다시 24일로 연기되었다.
    • 이어서 착륙 예정지의 악천후로 인하여 25일로 연기되었다.
    • 또 발사 기지(케네디 우주센터)의 악천후로 인해 27일 9시 53분으로 다시 정해졌다.
    • 챌린저 호 본체의 추가 정비가 필요해져 결국 발사는 28일로 미뤄지기에 이른다.
발사 직전, 오른쪽 SRB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기
챌린저의 파괴(346 kB, ogg/Theora format
  • 발사 당일
    • -6.6초 : 챌린저호 본체의 주 엔진 점화.
    • 0초 : 발사.
    • +0.678초 : 오른쪽 보조추진로켓(고체 로켓 부스터(이하, SRB) 아래쪽에서 검은 연기가 나는 것이 확인됨.
    • +2.273초 : 연기가 더 이상 뿜어져 나오지 않게 됨.
    • +3.375초 : 연기가 모두 확산되어 보이지 않게 됨.
    • +28초 : 주 엔진의 출력을 낮춰 궤도 수정.
    • +35.379초 : 주 엔진의 출력을 65%까지 높여, 마하 1 돌파.
    • +51.860초 : Max Q(가장 압력이 높은 지점)에 도달함.
    • +58.788초 : 오른쪽 SRB 아래쪽에 불꽃이 확인됨. 이는 나중에 기록을 판독하여 확인된 결과로, 당시에는 챌린저 호 내에서도, 휴스턴의 관제센터에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 +1분 0.238초 : 불꽃이 SRB와 우주왕복선 외부 연료 탱크(이하, ET)의 연결 부위로 옮겨 붙음.
    • +1분 4.660초 : ET의 액체 수소 탱크에서 수소가 새어나옴.
    • +1분 6.764초 : ET 수소 탱크의 압력 저하가 확인됨.
    • +1분 8초 : 관제센터, 챌린저 호에 출력 증가를 지시함.
    • +1분 12.284초 : 오른쪽 SRB가 갑자기 바깥쪽으로 밀리는 현상이 관측됨.
    • +1분 12.525초 : 사후의 분석에 따르면 오른쪽 SRB가 갑자기 가속하였음. 이는 선내의 승무원들도 인지하였을 것으로 추정됨.
    • +1분 13.025초 : 조종실 CCTV에 기록된 마지막 부분으로 스미스 조종사가 계기판을 보며 "Uh oh"라고 반응하고 있다. 주엔진의 작동상태나 ET의 압력저하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1분 13.124초 : ET의 수소 탱크 위쪽 돔이 파손되어 산소 탱크쪽으로 밀려들어감. 동시에 오른쪽 SRB가 앞쪽 연결부 방향으로 돌아오면서 ET를 타격함.

사고의 원인 분석[편집]

발사 당일, 추운 날씨로 인해 발사대에 고드름이 생겼다.

사고의 원인은 오른쪽 SRB의 O링(간단히 말해서 고무패킹이다)이 추운 날씨로 인해 얼어 버려 제 기능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O링은 이전까지의 발사로 인해 부식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리자들은 이제까지 30% 이상 부식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3배의 여유가 있으므로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해 버렸다. 발사 전 NASA와의 회의 때, 우주왕복선 고체 로켓 부스터를 설계하고 제작한 모튼 치오콜사의 경험 많은 O링 기술자는 발사를 취소하거나 일정을 조정해달라고 몇 번이고 요청하였다. 그는 매우 낮은 온도가 O링을 얼게하여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NASA와 치오콜사의 고위 관리자들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발사를 허가하였다. 결과적으로 챌린저 우주왕복선에 장비된 SRB의 O링은 얼어붙은 데다 완전히 부식하였으며, 발사 후 그 틈으로 새어나온 고온, 고압의 연료에 불이 붙었다. SRB는 발사 후 2분 뒤에 분리되므로 그대로 2분만 버텨주었으면 무사히 발사될 수도 있었으나, 풍향이 변하여 SRB의 불꽃이 외부연료탱크(ET) 아래쪽에 들어 있는 액체수소 연료로 옮겨붙었고 ET는 이 화재로 폭발했다. 이로 인해 발생한 고온, 고압의 연기 속에서 챌린저호 본체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여 그대로 공중분해되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하고 말았다.

사고의 영향[편집]

  • 우주왕복선의 운용이 전면 중지되었다. 운용이 재개된 것은 약 2년 8개월 뒤인 STS-26(1988년 9월 29일 발사, 디스커버리호)이었다.
  • 희생자들의 이름을 딴 학교, 도로, 건물 등이 생겨났고, 크레이터소행성에도 희생자들의 이름이 붙여졌다. 특히 학자 출신인 맥네어와 교사 출신인 맥컬리프의 이름을 따 개명된 학교가 많았다.
  • 승무원들의 유족이 중심이 되어 비영리 교육재단인 챌린저 재단이 설립되었다. 동 재단에서는 미국 내외에서 약 60여개소의 우주 과학에 대한 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그 중 미국 국외에는 3개소의 교육센터가 운영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내에는 양주시에 위치한 송암천문대에서 운영되고 있다.
  • 1990년에는 영화화되었다. 해당 영화는 STS-51-L 미션의 발사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 STS-4 이후로 철거되었던 우주왕복선의 승무원 비상탈출기구가 재차 설계, 설치되었다. 이는 승무원들 중 적어도 2명(오니즈카와 레스닉)이 기체의 잔해가 바다에 떨어질 때까지 생존해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 챌린저호와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악곡도 다수 만들어졌다.
    • 스웨덴의 그룹 유럽1986년 5월에 발표한 3집 앨범The Final Countdown의 타이틀곡 The Final Countdown은 챌린저호와 승무원들을 추모하는 곡이다. 크게 히트하여 동 그룹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한 이 곡은 비장한 가사와 화려한 분위기의 반주로 지금도 방송이나 행사의 시그널 음악으로 애용되는 곡이다.
    • 장 미셸 자르텍사스 주휴스턴의 1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에서 연주할 곡 중 Randez-vous VI'을, 동 곡을 공동작곡한 로널드 맥네어를 추모하여 Last Randez-vous(Ron's Piece)로 제목을 바꾸어 초연하였다.
    • 존 덴버Flying for Me는 크리스타 맥컬리프를 추모하는 곡이다. 덴버는 Teacher in space의 우주비행사 선발에 응모하기도 했다.[출처 필요]

주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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