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통일부흥위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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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일부흥위원단(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혹은 언커크6.25전쟁으로 파괴된 대한민국 재건을 목적으로 1951년 세워진 유엔의 기구였다. 일명 '한국통일부흥위원회'라고도 부르고 있다.

역사[편집]

한국통일부흥위원단의 전신으로 알려진 국제연합한국위원회의 임무는 국제연합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United Nations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가 승계했다. 한국통일부흥위원단은 한국전쟁이 진행 중이던 1950년 10월 제5차 국제연합 총회에서 설치가 결정됐으며 한반도의 재건, 구호, 통일, 민주정부 성립 등을 목표로 했다. 결국 1973년 12월 제28차 국제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 결의로 해체됐다.[1][2]

한국통일부흥위원단는 1948년에 세워진 국제연합한국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n Korea, 國際聯合韓國委員會)가 해체된 후 세워졌으며 1950년 10월 7일 제5차 유엔 총회에서 설치가 결의됐다. 그 후 1973년 12월 한국통일부흥위원단 마저 해체됐다.

UN기념공원[편집]

부산 UN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해 UN군 사령부가 조성했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했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UN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했다.

1955년 12월 15일, 한국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사항을 전달받은 UN은 이 묘지를 UN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UN총회에서 결의문 제 977(X) 호를 채택했다.

이에 따라 1959년 11월 UN과 대한민국간에 ‘UN 기념 묘지 설치 및 관리 유지를 위한 대한민국과 UN간의 협정’이 체결됨으로써 지금의 UN기념묘지로 출발하게 됐다.

그동안 유엔한국통일부흥위원단(UNCURK, 엉커크)에 의해 관리됐으나, 1973년 12월 UNCURK가 해체됨에 따라, 1974년부터 관리업무가 11 개국으로 구성된 UN기념공원 국제관리위원회(Commission for the UNMCK)에 위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석[편집]

  1. 한국통일(韓國統一) 전망(展望)은 요원(遼遠) 부산일보(2010.10.08) 기사 참조
  2. 원로 외교관 최운상의 1954년 ‘제네바 한반도 통일회의’ 회고 신동아(2008.02.25) 기사 참조

같이 보기[편집]

참고 자료[편집]

  • 「예방외교」, 남북한 정권 수립, 장호근 저, 플래닛미디어(2007년, 175~190p)
  • 「한국현대정치론」, 자유당 정권의 선거조종과정, 한배호 저, 오름(2000년, 406~4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