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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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Christine France Savoy.jpg
마담 루아이얄
재위 1615년 11월 25일 ~ 1619년 2월 10일
전임자 프랑스의 이사벨
후임자 마리 테레즈
사보이 공작 부인
재위 1630년 7월 26일 ~ 1637년 10월 7일
전임자 스페인의 카테리나 미카엘라
후임자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마들렌느
배우자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
자녀 루이지 아마데오
루이자 크리스티나
프란체스코 지아친토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
마르게리타 욜란다
헨리에타 아델라이데
카타리나 베아트리체
본명 Christine Marie de France
왕가 부르봉 왕가
사보이 왕가
부친 앙리 4세
모친 마리 드 메디시스
출생 1106년 2월 10일(1106-02-10)
프랑스 왕국 프랑스 왕국 파리 루브르 궁
사망 1663년 12월 27일 (57세)
사보이 공국 사보이 공국 토리노
매장지 사보이 공국 사보이 공국 베르첼리
서명 Signature of Christine of France, Duchess of Savoy in 1630.jpg

프랑스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이탈리아어: Cristina di Borbone 크리스티나 디 보르보네[*], 프랑스어: Christine Marie de France 크리스틴 마리 드 프랑스[*], 1606년 2월 10일 ~ 1663년 12월 27일는 사보이 공작 비토리오 아메데오 1세의 아내다.

생애[편집]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와 왕비 마리 드 메디시스 의 둘째딸로 루브르궁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형제들로는 루이 13세, 스페인 왕비 이사벨, 잉글랜드의 헨리에타 마리아 등이 있다. 언니 이사벨의 결혼 이후, 그녀는 언니의 칭호인 마담 루아이얄을 물려받았다. 1619년 2월 10일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비토리오와 결혼했으며, 이탈리아식 이름은 마리아 크리스티나(Maria Cristina)가 되었다. 1637년 남편 비토리오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이듬해에는 남편의 뒤를 이어 사보이 공작이 된 아들 프란체스코 지아친토도 요절했다. 사보이 공작의 지위는 삼남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가 물려받았으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그녀가 섭정이 되었다. 그러자 남편의 두 시동생들이 마리아 크리스티나를 통해 프랑스가 사보이 공국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을 염려해 반기를 들었고 오랜 대립 끝에 1642년 양측은 화해했다. 시동생 중 한 명인 마우리치오 추기경은 교황의 승인을 얻어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큰딸 루이자 크리스티나와 결혼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조카딸인 프랑수아즈를 며느리로 맞아들였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토리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자녀[편집]

전 임
프랑스의 이사벨
마담 루아이얄
1615년 11월 25일 ~ 1619년 2월 10일
후 임
마리 테레즈
전 임
스페인의 카테리나 미카엘라
사보이 공작 부인
1630년 7월 26일 ~ 1637년 10월 7일
후 임
프랑스의 프랑수아즈 마들렌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