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성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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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에 대한 인물평[편집]

  • 인촌은 비록 감옥에 가고 독립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어떠한 독립투쟁 못지않게 우리 민족에 공헌을 했다고 나는 믿는다. 인촌은 동아일보를 창간해 우리 민족을 계몽하여 갈 방향을 제시해 주었고 큰 힘을 주었다. 그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었다. 인촌은 오늘의 중앙고와 고려대를 운영해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여 일제 치하에서 이 나라를 이끌 고급 인력을 배출, 우리 민족의 내실 역량을 키웠다. 인촌은 또한 근대적 산업규모의 경성방직을 만들어서 우리 민족도 능히 근대적 사업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과시했다. (김대중, 1993년 8월15일 광복 48주년 특별기고)
  • 인촌 선생은 한 시대를 이끌어 온 각계의 훌륭한 일꾼을 수없이 길러낸 ‘민족사의 산실’과 같은 존재 (김수환, 1991년 10월11일 인촌 탄생 100주년 추념사에서)
  • 인촌 선생은 일제 암흑정치하에서도 민족의 실력 배양을 위해 교육기관 언론기관 산업기관 등을 창설해 우리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한 민족의 위대한 선각자였다 (조병옥, 1958년 펴낸 회고록에서)
  • 인촌 선생은 민족 민주 문화주의 3대 강령을 내건 동아일보로 우리 민족의 앞날을 이끈 탁월한 스승이자 지도자였다 )김대중, 2000년 3월31일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 독립운동가였던 당숙 이규봉(李圭鳳) 선생이 귀국했지만 막상 할 일이 없었다. 이에 무작정 인촌을 찾아갔더니 ‘아무 소리 말고 일하라’며 동아일보 교열부에서 일하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박헌영(朴憲永)도 동아일보에서 일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처럼 인촌은 민족의 독립을 위해서 일한 사람은 사상적 차이를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받아들인 인물이라고 선친께서 늘 말씀하셨다. (이종찬 전 국정원장의 증언)
  • <동아일보> 창립자인 인촌 김성수(金性洙, 1891~1955)를 둘러싼 친일 논쟁이 법원 판결로 마침내 일단락됐습니다.

http://blog.ohmynews.com/jeongwh59/tag/%EC%9D%B8%EC%B4%8C%20%EA%B9%80%EC%84%B1%EC%88%98%20%EC%B9%9C%EC%9D%BC%ED%8C%8C%20%ED%8C%90%EA%B2%B0

-Wrecg (토론)

어록[편집]

  • "첫째는 우리가 쇄국을 하고 있을 때 저들은 개방을 하여 새로운 문물과 기술을 도입했다는 것이고, 둘째는 발전의 원동력이 바로 교육에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 "지금부터 5십 여년 전까지도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더 못사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1853년미국의 <페리> 함대가 대포를 쏘고 개항을 요구하자 일본은 무릎을 꿇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명치유신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이때의 명치왕은 파산 직전의 철종 임금으로부터 조정의 대권을 물려 받은 대원군이나 오십보 백보였습니다. 그로부터 3십 여년이 지나갔습니다. 대원군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쇄국정책을 썼습니다만, 명치왕은 유능한 신하들을 얻어 재빨리 서양의 모든 것을 받아들여 국력을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그 3십년의 격차 때문에 한 나라는 다른 한 나라에게 먹히게 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명치유신의 원동력은 역시 새로운 교육에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우리 민족이 일본의 기반에서 벗어 나려면 무엇보다 민족교육으로 양성된 인재들의 힘으로 따라가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 1912년 양부 김기중과 생부 김경중일본 방문시[1] —이 의견을 쓴 사용자는 100범(토론 | 기여)이나, 서명을 하지 않아 나중에 추가하였습니다.

언론에서 지적해준 사항들을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요?[편집]

교학사에서 무단으로 베껴가신 덕분에 문서의 오류점이 확인되었습니다. 몇가지는 제가 수정하였는데 대필의혹에 관한 사진을 구해서 수정을 해야 할 듯합니다. 일단 사진을 내리고, 해당 부분을 수정하겠습니다. 사진을 구하시는 분은 기여해 주세요. --팝저씨 (토론) 2013년 9월 6일 (금) 22:57 (KST)[답변]

문서의 전반적 논조[편집]

글 전체를 읽어보면 지나치게 김성수의 행적을 정당화하는 듯한 서술이 눈에 띕니다. 객관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도 보이고요.

"그러나 1930년대 후기부터 일제 식민지 정책이 중일전쟁 (1937-1945)에 때맞춰서 민족말살정책으로 펼쳐지면서 더 많은 압제정책으로 한국의 지성인들을 강압적으로 동원하는 과정에서 암흑기였지만 독립을 멀리 내다 보시면서, 일본 식민지 정부가 우리나라 정부였기 때문에 강경하게 맞서지 않고 온화하게, 거부하지 않고 일본의 강압적인 동원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가와 민족의 지도자로서 살아남은 자의 굴욕을 삼키면서 우선 당장은 아니지만 독립의 서광을 멀리 내다보고 인내하는 지성인의 고뇌로 혼란의 시대를 이끌어간 문화적 지도자에게 단순한 단어 "친일파"라는 용어로 규정짓는 것은 섣부른 판단인 듯 하다."

등의 서술은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된 서술이라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북한 앞잡이 신성모 국방 장관"라는 표현이 눈에 띄는데, 이 역시 주관적인 평가가 개입된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수에 대한 평가의 문제가 워낙 예민한 문제라서 아직 문서를 건드리지는 않았지만,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위키백과에 알맞는 서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 달 정도를 기다려서 이의가 없다면 문서에 대해 편집을 가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용자:isaac914 (토론) 2014년 11월 28일 (금) 02:28 (KST)[답변]

앞 부분 내용 이동[편집]

문서의 앞 부분은 전체를 요약한 내용이 담겨야 합니다. 또한, 사람에 대한 전기인 경우 해당 인물의 전반적인 평가에 의해 비중을 고려하여 내용을 기술해야 합니다. jtm71 (토론) 2016년 1월 14일 (목) 23:19 (KST)[답변]

외부 링크 수정됨 (2018년 8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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