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스 A. 깁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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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스 A. 깁슨
Kenneth A. Gibson
출생 1932년 5월 15일
미국 미국 앨라배마 주 엔터프라이즈
직업 토목기사, 정치인
정당 민주당

케네스 앨런 깁슨(Kenneth Allen Gibson, 1932년 5월 15일 ~ )는 미국민주당 정치인이자, 아프리카계 미국인 처음으로 뉴어크의 시장(1970~86)을 지냈다. 미국 북동부 지역에서 처음으로 선출된 흑인 시장이었다.

생애와 경력[편집]

앨라배마 주 엔터프라이즈에서 출생하여 후에 뉴저지 주로 이주하였고, 단과대학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하였다. 1950년부터 1960년까지 뉴저지 교통부를 위한 토목기사로 근무하였고, 뉴어크 주택 권위의 최고 기사(1960~66), 뉴어크 시의 최고 건축기사(1966~70)을 지냈다.

시장 경력[편집]

1970년 뉴어크의 34대 시장으로 선출되자, "뉴어크는 거의 타락한 상태이고 재정적으로 국가에서 불구한 도시"라는 사실을 특별히 언급하였다. 이전의 행정이 부패한 이래, 그는 관청에 개혁인으로서 들어갔다. 그가 시장에 선출된 같은 해, 전임시장 휴 아도니치오가 부당 취득과 불법 공모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깁슨은 또한 도시의 큰 흑인 인구의 대표이기도 하였다. 1950년대 이래 남부에서 흑인들이 북부로 직업의 기회를 찾으러 아직도 도착하고 있을 때 산업 조직이 파괴된 이래 도시의 산업력이 급격히 감소되었다.

도시의 교외화와 인종적 긴박의 힘을 합쳐, 뉴어크는 1960년대 북부와 중서부의 공업 도시들에서 비슷한 문제들 - 빈곤의 증가와 무직 상태로 놓아진 가족들의 역기에 부닥치고 말았다. 깁슨이 시장에 선출되기 3년 전에 뉴어크는 큰 흑인 폭동에 의하여 상처를 입었다. 많은 기업들과 주민들이 도시를 떠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4년 깁슨은 도시에서 떠나는 기업들을 지키는 그의 노력에서 자신의 후원자들 중에 다수를 멀리하였다. 법인 자격과 국가의 이익이 도시에서 큰 영향력이 있었다.

1976년에는 미국 시장 회의에서 첫 흑인 회장이 되었다. 깁슨의 16년 시장 생활 후에 뉴어크의 실업률이 거의 50%로 늘었고, 도시의 인구가 계속 감소하였고 극장도 없고 단 하나의 슈퍼마켓 만이 남아있었고 고등학생의 3분의 1만이 졸업을 하였다. 1986년에서 시장직에서 물러났다.

법률상 위기[편집]

그의 임기 마지막 동안에 깁슨은 불법 공모와 위법 행위로 기소되었으나 재판에서 사면되었다. 후에 증회와 어빙턴 근교에서 학교 건설 계획으로부터 자금을 훔친 죄로 기소되었다. 2002년 세금 사기로 유죄 판결을 받았을 동안 깁슨의 법률 상사는 사기에 유죄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