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익급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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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급진당
Parti Radical de Gauche
약칭 PRG
당수 장미셸 베이레
창당 1972년 (MGRS)
1973년 (MRG)
1994년 (급진당)
1996년 (PRS)
1998년 (PRG)
중앙 당사 13, Rue Duroc
75007 파리 시
이념/정치노선 급진주의
사회자유주의
협동조합주의
친유럽주의
좌익
상징색 노랑, 파랑
상원 의석
0 / 343
하원 의석
0 / 577
유럽 의회
0 / 72
웹사이트
planeteradicale.org

좌익급진당 (프랑스어: Parti Radical de Gauche, 약칭 PRG)은 프랑스사회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좌익급진당은 중산층과 남서부의 전통적인 급진당 지역에 지지기반을 두고 있으나, 1982년부터 형성된 사회당과의 밀월관계로 인해 현재는 지역적·계층적 대표성만 가지고 있다. 좌익급진당은 오트코르스 주의 좌익 주류 정당이다.

당수는 장미셸 베이레이며, 사무총장은 엘리자베스 브아이에다.

역사[편집]

좌익급진당은 1972년, 프랑스 좌파 내 다수 정파였던 공화주의자, 급진주의자, 그리고 급진사회주의자당을 탈당한 세력에 의해 창당되었다. 창당 주도세력은 "좌파 연대"란 기치 아래, 사회당프랑스 공산당이 내놓은 "공동강령"에 찬성하는 급진주의자들이었다. 창당 당시의 당명은 급진사회주의좌파운동 (Mouvement de la Gauche Radicale-Socialiste, MGRS)였으며, 이는 곧 급진좌파운동 (Mouvement des Radicaux de Gauche, MRG)로 바뀐다.

로베르 파브르가 당을 지도한 1970년대 동안, 좌파급진운동은 "좌파 연대"의 세 번째 동지였다. 그럼에도 좌파 전체로 미루어볼때 파브르와 당의 득표력은 다른 두 좌파 정당(공산당, 사회당)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는 곧 급진좌파운동에 위기로 다가왔다. 로베르 파브르가 상대 진영인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일이 발생해, 그가 축출된 것이다.

이후 미셸 크레포1981년의 대선 후보로 낙점되었다. 그는 1차 투표에서 2%를 득표하였으며, 이후 결선 투표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 관계를 바탕으로 급진좌파운동은 1981년부터 1986년, 1988년부터 1993년까지 사회당과의 연정을 두 차례 구성할 수 있었다.

유명한 사업가이자 정치인인 베르나르 타피의 지도 아래에 있던 1990년대 초반, 급진좌파운동은 사회당의 위기로부터 반사 이익을 누려보고자 하였다. 이는 곧 현실로 나타나서, 1994년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 타피에 의해 작성된 후보 명부가 10%를 득표하게 된다. 그러나 타피가 이후 정치적 추문에 휩싸여 정계를 은퇴하자, 이로 인해 당은 이름을 급진당 (Parti Radical)로 바꿨으나 지지율은 바닥을 기게 된다.

이후 공화주의자, 급진주의자, 그리고 급진사회주의자당이 이 '급진당'이란 이름에 이의를 제기하자, 당은 다시 당명을 좌익급진당으로 바꾸게 된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결성된 다양한 좌파 연합의 일원으로 좌익급진당은 다시 집권당의 반열에 오른다. 2002년의 대선에서는 좌익급진당은 1981년이래 처음으로 독자 후보를 출마시키기로 결의하고, 크리스티안 토비라가 지명되어 1차 투표에서 2.3%를 득표하였다. 토비라는 대서양 노예 무역반인도주의 범죄로 선언한 2001년 법을 발의한 바 있다.

2007년의 대선에서, 다시 정계에 등장한 베르나르 타피를 비롯한 좌익급진당 지도부는 사회당세골렌 루아얄 대신 니콜라 사르코지를 지지하였다.

2007년의 의회 선거에서는 해외 프랑스령인 프랑스령 기아나 (크리스티안 토비라)와 생피에르 미클롱을 포함하여 총 577석 중 9석을 획득하였다.

2009년의 유럽 의회 선거에서는 독자적인 선거 명부도 내지 않았으며, 사회당 등이 다른 좌파 정당이 내놓은 선거 명부에도 참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