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크스부르크 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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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크스부르크 화의 (Augsburg 宗敎和議, Augsburg Settlement)는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국회에서 맺어진, 황제와 프로테스탄트 제후간의 강화이다.[1] 이는 종교 개혁 중에 개신교(루터파)와 로마 가톨릭 간 신앙적인 갈등을 일시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각 군주가 종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는 인정 하였다. 중앙집권화된 종교적 위계를 거부함으로써 군주 지배를 배격했던 진보적 성향의 칼뱅주의는 제외되었다.

개요[편집]

슈말칼덴 전쟁에서 패배한 프로테스탄트의 망명자들이 작센공 모리츠의 마그데부르크 소탕을 명령했다. 모리츠는 토벌군을 이끌고 황제를 향해 진격하여 이를 격파하고 파사워의 화해를 맺었다. 이 때문에 카를 황제는 퇴위하고 동생인 페르디난드가 대신하여 프로테스탄트 제후와 종교화의를 맺었다. 아우크스부르크의 신앙 고백을 갖는 교회가 인정되고, 군주가 받드는 종파(宗派)에 영민(領民)들은 복종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이주의 자유는 인정되었다. 더욱이 제국의 자유도시에서는 양파의 공존이 인정되었다.[1]

이렇게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일단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게 되었고, 신구(新舊) 양파의 싸움은 끝났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방 영주제(領主制)의 승리로, 종교적 관용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1]

주석[편집]

  1.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화의, 《글로벌 세계 대백과》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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