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대한민국의 보물 | |
종목 | 보물 제572호 (1973년 7월 10일 지정) |
---|---|
수량 | 일괄 (1축, 1건) |
시대 | 고려 |
소유 | 송광사 |
관리 | 송광사 |
위치 | |
주소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송광사 (신평리) |
좌표 | 북위 35° 00′ 08″ 동경 127° 16′ 32″ / 북위 35.00222° 동경 127.27556° |
정보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順天松廣寺高麗古文書)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 시기의 문서 2점으로, 고려 시기 묵으로 쓴 글씨가 남아 있는 희귀한 자료이며, 당시의 사회 모습을 알 수 있는 문화재로서 평가받고 있다.
내용[편집]
고려고문서는 문서 2개를 아우르는 단어이며, 하나는 수선사형지기, 다른 하나는 노비첩이다.
수선사형지기[편집]
고종 시기인 1221년부터 1226년 사이 송광사의 재산 현황표인 형지안(形止案)이 기록된 문서이다. 두루마기 형태의 문서이며, 앞쪽이 약간 손상되어 있다.[1] '수선사'는 지눌이 송광사에서 결성했던 '수선결사'라는 뜻으로,[1] 수선사는 송광사의 예전 이름이다.[2] 본문에는 수선사의 창건 연혁을 시작으로, 가람의 규모 및 배치, 승려 수, 토지나 노비 등 재산 목록, 작성한 관원이 적혀 있으며,[3] 현재까지 남아 있는 유일한 수선사와 관련한 문헌이기 때문에 당시 수선사의 규모, 대장경의 관리 등을 연구할 때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데 더해,[4] 수선사와 고려 정부 사이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을 정도로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5] 다른 문헌에서 등장하지 않는 촌과 부곡의 지명이 등장하기도 한다.[2]
노비첩[편집]
충렬왕 7년 (1281년) 원오국사 천영이 노비를 사찰 소유로 바꾸는 것에 대한 허가를 받기 위해 보낸 문서로, 종이 1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글자를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1] 내용 중에는 원오국사의 부친이 원오국사에게 노비를 상속해 주었다는 언급이 있어, 고려 시대 출가한 경우에도 재산 상속은 이루어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3] 문서의 마지막에는 고려 후기 문신 조인규의 서명이 있다.[1]
각주[편집]
- ↑ 가 나 다 라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디지털순천문화대전.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가 나 “보물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가 나 “송광사 고려문서”. 《울산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자료실》. 2017년 7월 13일. 2024년 2월 2일에 확인함.
-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배상현 (2004). “송광사 소장 고문서에 비친 고려 사원의 모습: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를 중심으로”. 《한국중세사연구》 (17): 207-238.
외부 링크[편집]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송광사 고려고문서 수선사형지기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순천 송광사 고려고문서 노비문서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