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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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재선
출생1944년 월 일(1943-11-30)(80세)
성별남성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부모방응모, 모 노호용
자녀아들 2명, 딸 3명
친척동생 방재효, 방재규

방재선(1944년 ~ )은 대한민국의 언론인, 사회기관단체인이다. 조선일보의 사주였던 방응모의 아들로 '계초 방응모 선생 기념사업회'의 이사장이다. 본관은 온양.

생애[편집]

1944년 경기도 의정부에서 방응모와 노호용의 아들로 태어났다. 위로는 이복 누나 방재숙이 있었고, 호적상으로는 아버지 방응모의 양자였던 방재윤에 이어 둘째 아들이었다. 방응모는 본처에게서 아들이 없어서 형 방응곤의 둘째 아들 방재윤을 양자로 삼았으나 방재윤은 일찍 사망하고 뒤에 배영옥에게서 딸 방재숙을 얻은 뒤, 다시 노호용에게서 아들을 얻었다. 그 뒤에도 노호용은 방응모의 아들 방재효(1946년생), 방재규(1949년생) 등 두 아들을 더 두었다.

그는 방응모가 환갑이 넘어서 얻은 친아들이었으나, 조선일보의 소유권은 양아들 방재윤의 아들 방일영방우영에게 승계되었다[1]. 방응모가 사망할 당시 그는 미성년자였고, 조카인 방일영, 방우영이 성인이었고 방응모 체제 하에서 조선일보사의 기자로 활동했던 점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하나의 원인이 된 듯 하다. 1950년 6월 한국 전쟁 중 피난가지 못한 아버지 방응모가 북한군에 끌려가면서 고아가 됐다.

그는 1977년 7월 조선일보에 대한 상속권 포기서를 제출했으나, 1983년과 2001년에 상속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다[2]. 1996년에는 조선일보사 사옥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2003년 2월 조선일보와의 재산권 분쟁관계 중에 대통령 노무현의 형 노건평을 만났다가 의혹을 받기도 하였다[3].

2001년 9월 조카 방일영을 상대로 호주상속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패소하였다.

2001년 '조선닷컴사(www.chosunhost.com)'를 설립하였고, 2003년 1월 경제주간지 조선경제를 등록하고 7월, 창간호를 발행하여 조선일보와 상표권 분쟁을 벌였다.[3] 그밖에 방응모 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내기도 했다.

기타[편집]

  • 아버지 방응모의 친일협력행위에 대한 공식 사과를 한 바 있다.
  • 2003년 8월 8일 조카 방일영이 사망하자 빈소를 찾아갔으나 문상거부당했다.

8월 8일 오후 6시20분경 서울대학교병원에 도착한 방씨는 아내 김아무개(39)씨, 딸 3명과 함께 빈소로 들어가려 했으나 조선일보 직원들과 병원 경비직원들에게 가로막혔다. 방씨와 직원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은 없었지만, 방씨의 아내 김씨가 장례식장으로 올라가려다 병원 직원에게 떠밀려 넘어지면서 한때 소란이 일기도 했다[4].

아내와 딸 3명과 함께 방일영의 빈소에 조문하러 갔다가 강제로 끌려나갔고 실랑이를 했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왜 못들어가게 하느냐"고 항의했지만, 직원들은 "다 알면서 왜 이러느냐"고 답하며 방씨 가족들의 입장을 막았다.[4] 오마이뉴스 취재진은 조선일보를 취재하였다. 조선일보 한 관계자는 "방씨를 왜 못들어가게 하느냐"는 질문에 "상주들이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방씨의 조문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방상훈 사장과 방씨 사이의) 피차 어르신들 얘긴데,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느냐"며 답변을 피했다[4].

방상훈 사장 등 유족들은 방씨의 조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방씨가 계초 방응모의 '친일 행각'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1층 입구에서 약 40분간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던 방씨는 빈소에 머물고 있던 자신의 아들 방아무개(33, 디지털조선 기자)씨를 통해 방상훈 사장과 연락을 했고, 방 사장으로부터 "(친일 발언을)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방 사장이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친일했다고 얘기할 수 있느냐, 들어와서 아버지가 친일 했다는 얘기를 사과한다면 출입을 허락하겠다'고 말했다"며 "친일 한 것은 한 것이지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항변하였다[4].

가족 관계[편집]

아들 2명 중에 1명은 조선일보의 기자로 있고, 후처인 김모씨에게서 딸 3명을 얻었다. 아버지 방응모의 양자였던 방재윤은 그의 사촌 형이기도 하다.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1. 방재선씨, 조선일보 사주일가 고발 한겨레신문
  2. 방응모의 사망이 공식 확인된 것은 1990년대 이후 탈북자와 북한 측 인사들의 증언에 의한 것으로, 당시 방응모의 사망확인이 안된 상태에서 1979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는 발행인을 방응모의 명의로 발행했다
  3. 관점이 있는 뉴스 - 프레시안
  4. 노대통령도 조화...방재선씨 조문 거부당해 -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