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오 독립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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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독립선언(戊午獨立宣言)은 대한 독립선언이라고도 불리며 3·1 운동의 전초가 된 독립 선언서 발표 사건이다.
1919년 2월 만주와 연해주 및 중국, 미국 등 해외에서 활동 중인 독립 운동가들 39명 명의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었다. 이때가 음력으로 무오년인 1918년 12월이었기에 무오 독립 선언으로 불린다.
만주 지린에서의 무오 독립 선언 직후 일본 도쿄에서는 2·8 독립 선언이 발표되었고 곧이어 전국적인 3·1 운동이 일어났다.
[편집] 무오 독립선언서
조소앙이 기초한 선언서에는 사기과 강박으로 이루어진 일본과의 병합은 무효이며 육탄혈전으로라도 독립을 쟁취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 “ |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 손으로 무찌르라. 이로써 5천년 조정의 광휘(光輝)를 현양(顯揚)할 것이며, 이로써 2천만 백성[赤子]의 운명을 개척할 것이니, 궐기[起]하라 독립군! 제[齊]하라 독립군!
천지로 망(網)한 한번 죽음은 사람의 면할 수 없는 바인즉, 개·돼지와도 같은 일생을 누가 원하는 바이리오. 살신성인하면 2천만 동포와 동체(同體)로 부활할 것이니 일신을 어찌 아낄 것이며, 집안이 기울어도 나라를 회복되면 3천리 옥토가 자가의 소유이니 일가(一家)를 희생하라! 아 우리 마음이 같고 도덕이 같은 2천만 형제자매여! 국민본령(國民本領)을 자각한 독립임을 기억할 것이며, 동양평화를 보장하고 인류평등을 실시하기 위한 자립인 것을 명심할 것이며, 황천의 명령을 크게 받들어(祇奉) 일절(一切) 사망(邪網)에서 해탈하는 건국인 것을 확신하여, 육탄혈전(肉彈血戰)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
” |
[편집] 함께 보기
| 위키문헌에 이 글과 관련된 자료가 있습니다. |
[편집] 외부 고리
- 《광복회보》 제281호/1면 (2007.2.26) 대한독립선언 선포 제88주년 기념식
- 《한겨레》 (2007.2.1) ‘대한독립선언’선포 기념식 열려
- 이병구, 보훈기고 - 2월, 독립선언의 역사를 되새기며/‘대한독립선언’과 ‘2·8 독립선언’ 《내일신문》 (2007.2.9)
- "육탄혈전으로…" 우리 민족 첫 독립선언서 原本 발견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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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독립선언 민족대표 39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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