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튀르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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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투르크 전쟁
(오스만-합스부르크 전쟁, 폴란드-오스만 전쟁,
오스만-베네치아 전쟁러시아-투르크 전쟁의 일부)
Juliusz Kossak Sobieski pod Wiedniem.jpeg
날짜 1662년-1699년
장소 오스트리아, 헝가리, 세르비아, 그리스
우크라이나(크림도 포함)
결과 신성 동맹의 결정적 승리,
카를로비츠 조약 체결1
교전국
Banner of the Holy Roman Emperor (after 1400).svg신성로마제국
*Armoiries Hongrie ancien.svg헝가리
*CoA of the Kingdom of Croatia.svg크로아티아
Flag of Russia.svg러시아 차르국
Herb Rzeczypospolitej Obojga Narodow.svg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Flag of Most Serene Republic of Venice.svg베네치아
세르비아인 반란군
Flag of Cross of Burgundy.svg 스페인
Flag of the Ottoman Empire (1453-1517).svg오스만 제국
Gerae-tamga.png크림 한국


1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발칸의 영토를 얻고,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의 일부를 지배하에 두었고, 러시아는 아조프를 점령, 베네치아는 모레아를 얻었다.

대투르크 전쟁(Great Turkish War)은 17세기 중반 기간 신성 동맹(Holy League)으로 뭉친 동시대 유럽의 세력과 오스만 제국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을 말한다.

1667년-1683년[편집]

러시아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동부를 획득하고, 보흐단 흐멜니츠키(Bohdan Khmelnytsky, 1595-1657)의 반란이 연방에서 일어난 이후, 상당수 코사크들은 연방의 남동부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의 지도자인 페트로 도로셴코(Petro Doroshenko, 1627-1698)는 헤트만(Hetman; 폴란드 지휘관)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1629-1696)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오스만 제국과 연계하고자 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내부 분쟁으로 힘이 약해진 것을 알고 있던 술탄 메흐메트 4세(Mehmed IV, 1642-1693)는 국경에 위치한 카미에니에츠 포돌스키(Kamieniec Podolski)를 공격했다.

소규모 폴란드군은 대규모 오스만군에게 패배했다 때때로 이것을 1672년-1676년의 폴란드-오스만 전쟁으로 알려져 있다. 첫 전투는 헝가리 스코노그라드(Sconograd)에서 일어났다. 폴란드군은 패배했다. 폴란드는 3달간 후퇴했다. 다음에 폴란드군은 4년 동안 오스만과 맞서 싸웠지만 성과가 없었다. 오스만은 더 나아가 러시아와도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러시아-투르크 전쟁, 1676-1681) 카미에니에츠 포돌스키는 오스만에 항복했고, 오스만 술탄에게 포돌리아(Podolia)와 조공을 바치기로 했다.[1]

패배와 조약 조건이 바르샤바(Warsaw)에 전해지자 세임(Sejm)은 조공을 반대했고, 얀 소비에스키 휘하에 대군를 조직했다. 1673년, 폴란드군은 호친 전투(Battle of Khotyn)에서 승리했다. 오스만은 여전히 카미에니에츠 포돌스키를 보유하고 있었다. 폴란드 왕 미하우 코리부트 비시니오비에츠키(Michał Korybut Wiśniowiecki, 1640-1673)가 죽자 세임은 얀 소비에스키를 폴란드 왕으로 추대했다.

신성 동맹 전쟁 (1683년-1698년)[편집]

몇 년 동안의 평화 이후, 오스만 제국합스부르크 제국을 공격했다. 오스만군은 을 함락 직전까지 몰고갔지만 빈 전투(Battle of Vienna)에서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이끄는 기독교 동맹군에게 패배했다. 이로써 오스만 제국은 남동부 유럽에 대한 헤게모니(hegemony)을 상실했다.

교황 인노첸시오 11세(Innocentius XI, 1611-1689)는 신성 동맹을 발족했다. 1684년, 신성로마제국(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 베네치아 공화국(Venetian Republic)과 폴란드가 동맹에 가담했고[2], 러시아는 1686년에 동맹에 참여했다. 수많은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 프로테스탄트들이 동맹군에 자원했다. 제2차 모하치 전투(Battle of Mohács, 1687)에서 동맹군은 오스만군을 격파했다.

러시아는 유럽 세력 동맹에 공식적으론 처음 참가했다. 이는 20세기까지 계속되는 일련의 러시아-투르크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크림 전역(Crimean campaigns)과 아조프 전역(Azov campaigns)으로 통해 러시아는 오스만의 중요한 항구인 아조프를 획득했다.

1697년 젠타 전투(Battle of Zenta)에서의 승리와 작은 접전들(1698년의 포다이체 전투와 같은) 끝에 1699년 동맹군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오스만은 카를로비츠 조약(Treaty of Karlowitz)에 서명했다. 오스만 제국은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슬라보니아(Slavonia; 현 크로아티아 북동부)를 오스트리아에 할양했고 포돌리아(Podolia; 현 우크라이나 남서부)를 폴란드에 반환했으며 달마티아(Dalmatia; 크로아티아 남서부) 대부분과 모레아(Morea;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베네치아에 할양했다. 모레아는 1718년 파사로비츠 조약(Treaty of Passarowitz)을 통해 되찾는다.

더 보기[편집]

참조[편집]

  1. Kemp, Arthur, Jihad: Islam's 1,300 Year War Against Western Civilisation, (Lulu.com, 2008), 38.
  2. Treasure, Geoffrey, The making of modern Europe, 1648-1780, (Methuen & Co Ltd., 1985), 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