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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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위(郭威, 904년 ~ 954년)는 오대십국시대 후주(後周)의 초대 황제(재위 : 950년 ~ 954년)이다. 자는 문중(文仲). 묘호는 태조(太祖)이며, 시호는 신성공숙문무효황제(聖神恭肅文武孝皇帝)이다.

생애[편집]

아버지 곽간(郭簡)은 진왕(晉王) 이극용(李克用)의 시대에 주자사를 맡은 고위 관리였지만, 곽위가 어린 시절에 전쟁으로 휘말려 아버지 곽간이 전사하여 곽씨 가문은 몰락하였다. 가문의 재건을 위해 병졸로 입대하여, 유지원(劉知遠)에게 그 재능을 인정을 받아 신하가 되었다. 유지원이 후한(後漢)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워 추밀부사에 승진하였다.

948년 유지원이 사망하고 은제 유승우(隠帝 劉承祐)가 즉위하자, 추밀사로 승진하였다. 그리고 거란을 격퇴하는 등 군사 방면에도 많은 군공을 세웠고, 덕망을 얻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곽위의 명성을 유승우가 두려워하여, 곽위의 일족을 몰살하였고, 곽위 자신도 목숨의 위협을 받았다. 이 때문에, 군과 함께 역으로 반란을 일으켜 유승우를 살해하여, 유지원의 동생인 유숭(劉崇)의 아들 유빈(劉贇)을 황제로 세웠지만, 머지 않아 유빈도 살해하고 스스로 황제로 즉위해 후주(後周)를 건국하였다.

황제로 즉위한 곽위는 농촌의 부흥과 절도사의 통제와 감시, 군사력 강화, 국내 정치에 몰두하였다.

가족들이 몰살되어서, 곽위와 함께 행동하여 난을 피한 조카인 시영(柴榮, 황후 시씨(皇后柴氏)의 조카)을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그 뒤에 사망하여 양자인 시영이 제위에 올랐다.

전 임
(초대)
제1대 후주의 황제
950년 ~ 954년
후 임
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