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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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唐

 

923 ~ 936
五代后唐(繁).png
수도 낙양
정치
공용어 중국어
정부 형태 전제군주제
황제 이존욱 (923 ~ 926)
이사원 (926 ~ 933)
이종후 (933 ~ 934)
이종가 (934 ~ 936)
역사
 • 성립 923년
 • 멸망 936년
중국의 역사
중국의 역사
신화와 고대
선사 시대
황하장강 문명
신화·삼황오제
기원전 2070?~기원전 1600?
기원전 1600?~기원전 1046?
기원전 1046?~기원전 256
  서주 기원전 1046?~기원전 771
  동주 기원전 771~기원전 256
    춘추 시대 기원전 771~453
    전국 시대 기원전 453~221
제국의 시대
기원전 221~기원전 206
기원전 208~기원전 205
서초 기원전 205~기원전 202

기원전 202~서기 220
  전한 기원전 202~서기 8
  8~23
  후한 25~220

삼국 시대 220~280
  220~265
  촉한 221~263
  229~280
265~420
  서진 265~316
  동진 317~420 오호 십육국 시대
304~439
남북조 시대 439~589
581~618

618~907
무주 690~705

오대십국시대
907~960

916~1125

960~1279
  북송
 960~1127
서하
1038~1227
  남송
 1127~1279

1115~1234
1271~1368

1368~1644

1644~1645

1616~1912

현대의 중국
중화민국 (북양 정부, 국민정부) 1912~1949
중화인민공화국
1949~현재

중화민국
(타이완)
1949~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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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당((後)唐, 923년~936년)은 오대십국 시대 중 오대(五代)의 두 번째 왕조로 이국창(李國昌)의 손자이며, 진왕(晉王) 이극용의 아들 이존욱이 건국한 나라이다. 당나라의 후계자를 자임하여 국호를 으로 하였는데, 당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후당으로 부르고 있다. 수도는 낙양(洛陽)이다.

역사[편집]

당나라 말기 돌궐 사타족 출신의 이극용이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로서 진양(晋陽;태원)에 주둔하여 산서지방에서 일어난 (晋)나라가 그 전신(前身)이다. 이극용은 당나라 조정으로부터 진왕의 지위를 제수받았으나, 라이벌 주전충과의 세력다툼에서 패배했다. 주전충이 당나라를 멸망시키고 후량을 세우자 이극용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후량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였다.

전기[편집]

이극용의 사후, 아들 이존욱이 진왕을 계승할 때쯤 후량의 내분이 일어나 서서히 진나라가 우세하게 되었다. 힘을 얻은 이존욱은 923년 위주(魏州)에서 황제를 칭하면서 후당을 건국했다. 같은 해 후량을 멸망시키고 중국 북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낙양에 수도를 정했다.

이존욱(장종;莊宗)은 이후 사천지방의 전촉을 멸망시키고, 남쪽 여러나라의 제위를 인정하지 않고, 중국의 재통일을 추진했으나, 서서히 교만해지면서 사치와 향략에 빠져 군대의 신뢰를 잃었다. 926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후당은 큰 혼란에 빠졌다. 장종은 부득이하게 이극용의 양자 이사원(후에 명종(明宗)에게 명하여 하북의 반란을 토벌하라고 지시했다. 이때 이사원의 양자 이종가와 사위 석경당의 책략하에 하북 반군은 이사원을 황제로 옹립하고 오히려 낙양에 쳐들어왔다. 장종은 부하에게 살해당하고 이사원은 반란을 수습하여 스스로 제위에 오른다. 수도를 낙양에서 카이펑으로 옮기니 그가 바로 후당의 명종이다.

후기[편집]

명종은 즉위 후 재상 풍도를 등용하여 정치를 바로 잡고, 열심히 다스렸기에 상당한 치적을 쌓았고 조정안팎은 매우 안정되었다. 다만 군인에게 많은 권한이 주어지게 된 것이 불안요소였다. 치세기간은 비교적 평온하게 보냈으나 만년에 이르러 제위를 둘러싼 혼란이 일어났다. 933년 명종이 병으로 쓰러지자 진왕(秦王) 이종영이 찬탈을 노리고 명종을 살해하려 병사를 이끌고 궁전에 들어왔으나 결과적으로 찬탈은 실패하고 이종영은 살해되었다. 명종은 아들이 자신을 살해하려는 사실을 알고 놀라 사망하였고, 대신들은 상의끝에 송왕(宋王) 이종후가 뒤를 잇게 하였으니 그가 바로 민제이다.

민제의 즉위 후 채용한 삭번정책은 군인들의 불만을 폭발시켜, 명종의 양자 노왕(潞王) 이종가가 반란을 일으켜 군사를 거느리고 수도에 쳐들어와 제위를 빼앗았다. 민제는 부인을 데리고 하북으로 도망쳤으나 이종가의 병사들에게 살해당했다. 이종가가 제위에 오르니 그가 말제이다.

말제가 즉위하였지만 이번엔 이종가와 함께 명종의 오랜 심복이면서 명종의 사위였던 석경당과 불화가 일어나 석경당이 진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말제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태원을 공격하자, 석경당은 북쪽의 거란에게 항복하여 원군을 요청하였고, 거란의 태종 야율덕광이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여 후당군을 격파했다.

석경당은 거란의 힘을 빌려 스스로 제위에 올라 936년 후진을 건국했다. 937년 1월 거란과 합세한 석경당의 대군이 낙양을 공격하자 말제는 스스로 불을 질러 죽었고, 후당은 멸망하였다.

후당의 지배영역은 하남, 산동, 산서, 하북, 섬서 북부, 감숙 동부, 호북 북부, 안휘 북부에 이르렀다.

역대 황제[편집]

대수 묘호 시호 재위 기간 연호 능호
(추존) 의조(懿祖) 소열황제(昭烈皇帝) 주야집의(朱邪執宜)
(추존) 헌조(獻祖) 문경황제(文景皇帝) 주야적심(朱邪赤心)
이국창(李國昌)
(추존) 태조(太祖) 무황제(武皇帝) 이극용(李克用) 건극릉(建極陵)
1 장종(莊宗) 광성신민효황제(光聖神閔孝皇帝) 이존욱(李存勖) 923년 ~ 926년 동광(同光) 923년 ~ 926년 옹릉(雍陵)
(추존) 혜조(惠祖) 효공황제(孝恭皇帝) 이율(李聿) 수릉(遂陵)
(추존) 의조(毅祖) 효질황제(孝質皇帝) 이교(李敎) 연릉(衍陵)
(추존) 열조(烈祖) 효정황제(孝靖皇帝) 이염(李琰) 혁릉(奕陵)
(추존) 덕조(德祖) 효성황제(孝成皇帝) 이예(李霓) 경릉(慶陵)
2 명종(明宗) 성덕화무흠효황제(聖德和武欽孝皇帝) 이사원(李嗣源) 926년 ~ 933년 천성(天成) 926년 ~ 930년
장흥(長興) 930년 ~ 933년
휘릉(徽陵)
3 민제(閔帝) 이종후(李從厚) 933년 ~ 934년 응순(應順) 933년 ~ 934년
4 말제(末帝) 이종가(李從珂) 934년 ~ 936년 청태(淸泰) 934년 ~ 936년

명장,명신[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