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폰파유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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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혼 폰파유하세나
พหลพลพยุหเสนา | |
시암의 제2대 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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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 | 1933년 6월 21일~1938년 12월 16일 |
군주 | 프라차티뽁 아난타 마히돈 |
전임 | 마노빠꼰 니띠타다(제1대) |
후임 | 쁠랙 피분송크람(제3대) |
신상정보 | |
출생일 | 1887년 3월 29일 |
출생지 | 시암왕국 끄룽텝주 프라나콘 |
사망일 | 1947년 2월 14일 | (59세)
사망지 | 태국 프라나콘주 두싯 |
국적 | 태국 |
학력 | 프로이센 전쟁대학 |
정당 | 인민당 |
부모 | 파혼 폰파유하세나 짭 파혼요틴 |
배우자 | 핏 파혼폰파유하세나 분롱 파혼폰파유하세나 |
자녀 | 파펀 파혼폰파유하세나 펀짠 스리폿짜낫 차이쭘폰 파혼폰파유하세나 풋티낫 파혼폰파유하세나 파찌 쑷티낰 푸앙깨우 쌋쁘룽 프롬턴마핫차이 파혼폰파유하세나 |
종교 | 불교 |
군사 경력 | |
복무 | 태국 왕립 군대 |
복무기간 | 1910년∼1946년 |
최종계급 | 대장 대장 대장 |
지휘 | 육군 총사령관 |
참전 | 1932년 사암 혁명 보원뎃 반란 송수라뎃 반란 프랑스-태국 전쟁 제2차 세계 대전 |
서훈 |
프라야 파혼 폰파유하세나(태국어: พระยาพหลพลพยุหเสนา) 또는 폿 파혼요틴(태국어: พจน์ พหลโยธิน, 1887년 3월 29일~1947년 2월 14일)는 태국 군 지도자 겸 정치인이었다. 그는 쿠데타로 전임 총리를 축출한 후 1933년 시암의 두 번째 총리가 되었다. 그는 5년간의 총리직을 마치고 1938년에 은퇴했다.
은퇴 및 사망
[편집]프라야 파혼 총리는 총리 임기를 마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왕립 태국군 조사관을 지냈으나 공적인 생활에서 은퇴했다. 1947년 2월 59세의 나이로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가 죽었을 때 관직을 많이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족은 그의 장례비를 지불할 자금이 부족했다고 한다. 그의 후견인이자 현직 총리인 쁠랙 피분송크람이 그 비용을 없애기 위해 개입했다.
유산
[편집]방콕에서 북쪽의 버마 국경까지 이어지는 파혼요틴 로드는 프라야 파혼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프라차띠파타이 로드로 알려져 있던, 현장 보안관 쁠랙 피분송크람은 그를 기리기 위해 도로 이름을 바꾸었다. 깐짜나부리주의 한 병원인 파혼 폰파유하세나 병원도 그의 명예로 이름이 붙여졌다.
롭부리주의 한 왕립 태국군 포병기지는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의 명령에 따라 푸미폰왕 기지로 개칭되기 전까지 프라야 파혼 총리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기슭에 설치된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프라야 파혼과 야전군수 쁠랙 피분송크람 동상을 철거하고 푸미폰왕 동상으로 교체한다.[1]
각주
[편집]- ↑ Charuvastra, Teeranai (2019년 12월 28일). “Statues Of 1932 Revolt Leaders to be Removed”. 《Khaosod English》. 2019년 12월 28일에 확인함.
외부 링크
[편집]전임 프라야 마노빠꼰 니띠타다 |
제2대 태국의 총리 1932년 ~ 1938년 |
후임 쁠랙 피분송크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