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레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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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란 전투에서 아서와 메드로(모드레드)가 전사하였다."
:"캄란 전투에서 아서와 메드로(모드레드)가 전사하였다."


《웨일스 연대기》는 960년~970년에 쓰인 것이지만, 그 내용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문헌을 참조한 것이다. [[레즐리 얼콕]]이 주장한 바와 같이 모드레드는 일찌감치 캄란과 연관관계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간략한 내용으로는 그가 아서 왕을 죽였는지 아니면 아서 왕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인지 심지어는 그가 정말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 구절을 모드레드가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으로 해석하였다. 하지만 모드레드는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은 아니었다. 웨일스 전설집과 족보에는 모드레드가 고귀한 혈통을 지닌 유력자라고 기록되었다.
《웨일스 연대기》는 960년~970년에 쓰인 것이지만, 그 내용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문헌을 참조한 것이다.<ref>[[Geoffrey Ashe|Ashe, Geoffrey]] (1991). "Annales Cambriae". In [[Norris J. Lacy|Lacy, Norris J.]] (Ed.), ''The New Arthurian Encyclopedia'', pp. 8–9. New York: Garland. ISBN 0-8240-4377-4.</ref> [[레즐리 얼콕]]이 주장한 바와 같이 모드레드는 일찌감치 캄란과 연관관계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간략한 내용으로는 그가 아서 왕을 죽였는지 아니면 아서 왕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인지 심지어는 그가 정말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 구절을 모드레드가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으로 해석하였다.<ref>Alcock, ''Arthur's Britain'', p. 88.</ref> 하지만 모드레드는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은 아니었다. 웨일스 전설집과 족보에는 모드레드가 고귀한 혈통을 지닌 유력자라고 기록되었다.


[[먼머스의 제프리]]가 쓴 《[[영국의 연대기]](Historia Regum Britanniae)》에는 모드레드가 아서 왕을 배신한 인물로서 비교적 비중 있게 등장하고 있다. 제프리는 모드레드가 웨일스 출신이며, 아서 왕이 로마 황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와의 전쟁을 위해 영국 해협을 넘어가면서 잠시 모드레드에게 자신의 대리 임무를 맡겨놓았다고 설명하였다. 아서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모드레드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귀네비어]]와 결혼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아서 왕은 반란을 진압하고자 황급히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캄란 전투]]에서 양측은 맞붙었으며, 결국 모드레드는 전사하고 아서 왕은 큰 부상을 입고 아발론으로 떠났다. 아서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콘스탄틴 3세 (영국)|콘스탄틴 3세]]는 모드레드의 두 아들이 이끈 나머지 잔존세력을 상대하였다.
[[먼머스의 제프리]]가 쓴 《[[영국의 연대기]](Historia Regum Britanniae)》에는 모드레드가 아서 왕을 배신한 인물로서 비교적 비중 있게 등장하고 있다. 제프리는 모드레드가 웨일스 출신이며, 아서 왕이 로마 황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와의 전쟁을 위해 영국 해협을 넘어가면서 잠시 모드레드에게 자신의 대리 임무를 맡겨놓았다고 설명하였다. 아서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모드레드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귀네비어]]와 결혼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아서 왕은 반란을 진압하고자 황급히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캄란 전투]]에서 양측은 맞붙었으며, 결국 모드레드는 전사하고 아서 왕은 큰 부상을 입고 아발론으로 떠났다. 아서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콘스탄틴 3세 (영국)|콘스탄틴 3세]]는 모드레드의 두 아들이 이끈 나머지 잔존세력을 상대하였다.

2011년 12월 11일 (일) 17:23 판

H. J. 포드가 1902년에 그린 모드레드 삽화.

모드레드(영어: Mordred 또는 Modred)는 아서 왕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이다. 아서 왕에 반기를 들어 캄란 전투에서 맞서 싸웠으며, 전투 결과 모드레드는 전사하고 아서 왕 역시 치명적인 부상을 입게 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모드레드는 아서 왕과 친척 관계 내지는 아서 왕과 그의 이부누이인 모르가나 르 페이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전해진다. 초창기 문헌에는 오크니롯 왕모르가즈의 적통 아들로서, 형제로는 가웨인, 아그라베인, 가헤리스, 개리스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드레드라는 이름은 라틴어 모데라투스(Moderātus)에서 유래한 것이다.[1]

전설

모드레드는 초창기 아서 왕 문학에서 등장한다. 《웨일스 연대기(Annales Cambriae)》에는 메드로(Medraut)라는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2]

Gueith Camlann in qua Arthur et Medraut corruerunt.
"캄란 전투에서 아서와 메드로(모드레드)가 전사하였다."

《웨일스 연대기》는 960년~970년에 쓰인 것이지만, 그 내용은 그보다 훨씬 오래 전의 문헌을 참조한 것이다.[3] 레즐리 얼콕이 주장한 바와 같이 모드레드는 일찌감치 캄란과 연관관계가 있었지만, 이 정도로 간략한 내용으로는 그가 아서 왕을 죽였는지 아니면 아서 왕의 손에 의해 죽은 것인지 심지어는 그가 정말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 구절을 모드레드가 아서 왕에 맞서 싸운 것으로 해석하였다.[4] 하지만 모드레드는 처음부터 그렇게 악한은 아니었다. 웨일스 전설집과 족보에는 모드레드가 고귀한 혈통을 지닌 유력자라고 기록되었다.

먼머스의 제프리가 쓴 《영국의 연대기(Historia Regum Britanniae)》에는 모드레드가 아서 왕을 배신한 인물로서 비교적 비중 있게 등장하고 있다. 제프리는 모드레드가 웨일스 출신이며, 아서 왕이 로마 황제 루키우스 티베리우스와의 전쟁을 위해 영국 해협을 넘어가면서 잠시 모드레드에게 자신의 대리 임무를 맡겨놓았다고 설명하였다. 아서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모드레드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 귀네비어와 결혼하였으며, 이 소식을 들은 아서 왕은 반란을 진압하고자 황급히 영국으로 귀환하였다. 캄란 전투에서 양측은 맞붙었으며, 결국 모드레드는 전사하고 아서 왕은 큰 부상을 입고 아발론으로 떠났다. 아서 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된 콘스탄틴 3세는 모드레드의 두 아들이 이끈 나머지 잔존세력을 상대하였다.

주석

  1. Cane, Meredith. Personal Names of Men in Wales, Cornwall and Brittany 400-1400 AD, University of Wales Ph.D. thesis, 2003, pp. 273-4.
  2. Lupack, Alan (translator). "Athurian References in the 'Annales Cambriae'. Camelot Project at the University of Rochester. Retrieved December 1, 2006.
  3. Ashe, Geoffrey (1991). "Annales Cambriae". In Lacy, Norris J. (Ed.), The New Arthurian Encyclopedia, pp. 8–9. New York: Garland. ISBN 0-8240-4377-4.
  4. Alcock, Arthur's Britain, p. 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