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후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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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상주하여 시시비비를 의논하는 것에 능했다.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역임하였고, [[종육]](鍾毓)과 더불어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으나 대부분 그의 견해가 채택되었다. 연상(燕相) · 낙안태수(樂安太守)<ref name="s9"/><ref name="w"/>를 역임하였으며, 37세에 사망하였다.<ref name="w">《문장서록》 (진수, 《삼국지》 권9 제하후조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ref> |
어려서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상주하여 시시비비를 의논하는 것에 능했다.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역임하였고, [[종육]](鍾毓)과 더불어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으나 대부분 그의 견해가 채택되었다. 연상(燕相) · 낙안태수(樂安太守)<ref name="s9"/><ref name="w"/>를 역임하였으며, 37세에 사망하였다.<ref name="w">《문장서록》 (진수, 《삼국지》 권9 제하후조전에 배송지가 주석으로 인용)</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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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소림(蘇林) · 위탄(韋誕) · 손해(孫該) · 두지(杜摯) 등과 함께 문장으로 저명하였다.<ref name="s21">진수, 《삼국지》 권21 왕위이유부전</ref> |
당대에 소림(蘇林) · [[위탄]](韋誕) · 손해(孫該) · 두지(杜摯) 등과 함께 문장으로 저명하였다.<ref name="s21">진수, 《삼국지》 권21 왕위이유부전</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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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에서의 하후혜 == |
== 《삼국지연의》에서의 하후혜 == |
2011년 3월 12일 (토) 11:16 판
하후혜(夏侯惠, ? ~ ?)는 중국 삼국 시대의 정치가로, 하후연(夏侯淵)의 아들이며,[1] 자(字)는 치권(稚權)이다.[2]
생애
어려서부터 학문에 재능이 있다고 알려졌으며, 상주하여 시시비비를 의논하는 것에 능했다. 황문시랑(黃門侍郞)을 역임하였고, 종육(鍾毓)과 더불어 여러 차례 논쟁을 벌였으나 대부분 그의 견해가 채택되었다. 연상(燕相) · 낙안태수(樂安太守)[1][2]를 역임하였으며, 37세에 사망하였다.[2]
당대에 소림(蘇林) · 위탄(韋誕) · 손해(孫該) · 두지(杜摯) 등과 함께 문장으로 저명하였다.[3]
《삼국지연의》에서의 하후혜
하후연의 3남으로 제갈량(諸葛亮)이 오장원으로 출전하였을 때 사마의(司馬懿)에게 발탁되어 동생 하후화(夏侯和)와 함께 행군사마가 되었다.
상방곡에서 촉군과 전투를 벌여 연승하였으나, 그것이 사마의가 함정에 빠지는 원인이 되었고, 제갈량의 목상에 놀라 도주하는 사마의를 하후패(夏侯霸)와 함께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