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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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 생애 ==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태화]]의 부인이고 가수 [[J (가수)|J]]의 고모다. 이후 당대 최고 작곡가 [[이봉조]]와 인연으로 그로부터 곡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수로 데뷔하였다.<ref name="star" /> 그녀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너〉로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가요제에서는 곡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방송 출현을 정지당했다. 81년 규제가 풀렸지만 재기 무대도 순탄하지 못했으나 곡 〈꽃밭에서〉로 말미암아 제2 전성기를 맞이하였다.<ref name="kukinews">{{웹 인용|url=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gCode=all&arcid=0005493307&code=23111411|title=가수 정훈희의 노래 그리고 신앙…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가수”|publisher=missionlife.kukinews.com|accessdate=2012-03-14}}</ref> 한창 대한민국 대표급 가수로서 거듭나던 가수 [[김태화]]와 혼인하고서 임신한 상태로 앨범 《우리는 하나》를 남편과 녹음하기도 했고 약 30여 년만인 [[2008년]]에 독집 앨범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을 발매하였다.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태화]]의 부인이고 가수 [[J (가수)|J]]의 고모다. 이후 당대 최고 작곡가 [[이봉조]]와 인연으로 그로부터 곡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수로 데뷔하였다.<ref name="star" /> 그녀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너〉로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가요제에서는 곡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방송 출현을 정지당했다. 81년 규제가 풀렸지만 재기 무대도 순탄하지 못했으나 곡 〈꽃밭에서〉로 말미암아 제2 전성기를 맞이하였다.<ref name="kukinews">{{웹 인용|url=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gCode=all&arcid=0005493307&code=23111411|title=가수 정훈희의 노래 그리고 신앙…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가수”|publisher=missionlife.kukinews.com|accessdate=2012-03-14}}{{깨진 링크|url=http://missionlife.kukinews.com/article/read.asp?gCode=all&arcid=0005493307&code=23111411 }}</ref> 한창 대한민국 대표급 가수로서 거듭나던 가수 [[김태화]]와 혼인하고서 임신한 상태로 앨범 《우리는 하나》를 남편과 녹음하기도 했고 약 30여 년만인 [[2008년]]에 독집 앨범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을 발매하였다.


== 대표곡 ==
== 대표곡 ==

2018년 11월 1일 (목) 22:47 판

정훈희
鄭薰姬
기본 정보
출생1952년 5월 11일(1952-05-11)(71세)[1][2]
경상남도 부산
(現 부산광역시)
성별여성
국적대한민국 대한민국
직업가수
활동 시기1967년 ~ 현재
배우자김태화
종교개신교

정훈희(鄭薰姬, 1952년 5월 11일 ~ )는 대한민국가수이다. 대표곡으로서 〈안개〉, 〈너〉, 〈그 사람 바보야〉, 〈무인도〉, 〈꽃밭에서〉 등이 있다.

생애

정훈희는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 정근수와 밴드 마스터였던 작은 아버지, 기타리스트인 큰 오빠 정희택 등 음악과 인연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수 김태화의 부인이고 가수 J의 고모다. 이후 당대 최고 작곡가 이봉조와 인연으로 그로부터 곡 〈안개〉를 받아 1967년 가수로 데뷔하였다.[2] 그녀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가수상을 받았고 이듬해 아테네국제가요제에서는 곡 〈너〉로써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수상했다. 1975년 칠레가요제에서는 곡 〈무인도〉로서 3위 상과 최고가수상을 동시에 받았다. 1975년, 대마초 파동에 연루되어 방송 출현을 정지당했다. 81년 규제가 풀렸지만 재기 무대도 순탄하지 못했으나 곡 〈꽃밭에서〉로 말미암아 제2 전성기를 맞이하였다.[3] 한창 대한민국 대표급 가수로서 거듭나던 가수 김태화와 혼인하고서 임신한 상태로 앨범 《우리는 하나》를 남편과 녹음하기도 했고 약 30여 년만인 2008년에 독집 앨범 《40th Anniversary Celebrations》을 발매하였다.

대표곡

  • 꽃밭에서 - 가수 소향과 소프라노 조수미가 리메이크하여 화제가 되었다. 가수 조관우의 리메이크도 유명하다. 1979년 제20회 칠레국제가요제에 이봉조와 콤비를 이뤄 참가하여 최우수 가수상을 수상했다.
  • 무인도 - 작곡가 이봉조와 함께 1975년 칠레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인기 가수상과 더불어 3위에 입상했다.
  • 꽃길
  • 안개 - 가수 현미의 남편인 작곡가 이봉조가 작곡하였다.
  • 연가

리메이크

각주

  1. “환갑 맞는 가수 속속. 조용필 최백호 임희숙 문주란….”. sports.khan.co.kr. 2012년 3월 14일에 확인함. 
  2. “`2011 세시봉` 업그레이드, 정훈희-송창식 30년만에 듀엣”. star.mk.co.kr. 2012년 3월 14일에 확인함. 
  3. “가수 정훈희의 노래 그리고 신앙…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나는 가수””. missionlife.kukinews.com. 2012년 3월 14일에 확인함. [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