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도수군통제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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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가 임금 겸 삼도수군을 지휘하여 왜적을 소탕하고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없앴다.
== 역대 삼도수군통제사<ref>김병륜 [http://kookbang.dema.mil.kr/kdd/CultureTypeView.jsp?writeDate=20090105&writeDateChk=20081210&menuCd=2004&menuSeq=39&kindSeq=1&menuCnt=30917 1593~1890년 역대 삼도수군통제사 명단 수록] [[국방일보]] 2008.12.10 작성</re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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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대 [[이순신]](李舜臣) -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임
* 제2대 [[원균]](元均) - 경상좌도 수군절도사 겸임
* 제3대 [[이순신]](李舜臣) -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임
* 제4대 [[이시언 (조선)|이시언]](李時言) - 이순신 [[작전 중 사망|전사]]후 부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임
* 제5대 [[유형]](柳珩)
* 제6대 [[이경준]](李慶濬)
* 제7대 [[이운룡]](李雲龍) - 임란시 옥포만호, 경상좌도 수군 절도사 역임
* 제8대 [[이기빈]](李箕賓)
* 제9대 [[이경준]](李慶濬)
* 제10대 [[우치적]](禹致績) - 임란시 영등포만호, 순천부사 역임
* 제11대 [[성우길]](成佑吉)
* 제12대 [[이정표]](李廷彪)
* 제13대 [[이영남]](李英男)
* 제14대 [[유지신]](柳止信)
* 제15대 [[정기룡]](鄭起龍)
* 제16대 [[김예직]](金禮直)
* 제17대 정기룡(鄭起龍)
* 제18대 [[원수신]](元守身)
* 제19대 [[구인후]](具仁垕)
* 제20대 [[이수일]](李守一)
* 제21대 [[이완 (1602년)|이완]](李浣)
* 제22대 [[구굉]](具宏)
* 제23대 [[신경원]](申景瑗)
* 제24대 [[변흡]](邊潝)
* 제25대 구인후(具仁垕)
* 제26대 [[신경인]](申景禋)
* 제27대 [[윤수]](尹王肅)
* 제28대 신경인(申景禋)
* 제29대 [[유림]](柳琳)
* 제30대 [[유정익]](柳廷益)
* 제31대 [[이곽]](李廓)
* 제32대 유림(柳琳)
* 제33대 [[이현달]](李顯達)
* 제34대 [[이완]](李浣)
* 제35대 [[김응해]](金應海)
* 제36대 [[이준한]](李俊漢)
* 제37대 [[유정익]](柳廷益)
* 제38대 [[황헌]](黃瀗)
* 제39대 [[이원로]](李元老)
* 제40대 [[남두병]](南斗柄)
* 제41대 [[유혁연]](柳赫然)
* 제42대 [[정익]](鄭膉)
* 제43대 [[조필규]](趙必逵)
* 제44대 [[김적]](金逷)
* 제45대 [[박경지]](朴敬祉)
* 제46대 [[김시성]](金是聲)
* 제47대 [[정전현]](鄭傳賢)
* 제48대 [[박경지]](朴敬祉)
* 제49대 [[이지형 (1608년)|이지형]](李枝馨)
* 제50대 [[이도빈]](李道彬)
* 제51대 [[유비연]](柳斐然)
* 제52대 [[김경]](金鏡)
* 제53대 [[유여량]](柳汝糧)
* 제54대 [[신여철]](申汝哲)
* 제55대 [[이지원]](李枝遠)
* 제56대 [[노정]](盧錠)
* 제57대 [[신류]](申瀏)
* 제58대 [[윤천뢰]](尹天賚)
* 제59대 [[이인하]](李仁夏)
* 제60대 [[전동흘]](全東屹)
* 제61대 [[민섬]](閔暹)
* 제62대 [[원상]](元相)
* 제63대 [[변국한]](邊國翰)
* 제64대 [[김세익]](金世翊)
* 제65대 [[유중기]](柳重起)
* 제66대 [[이세선]](李世選)
* 제67대 [[신여철]](申汝哲)
* 제68대 [[이성뢰]](李聖賚)
* 제69대 [[심박]](沈樸)
* 제70대 [[목림기]](睦林奇)
* 제71대 [[최숙]](崔橚)
* 제72대 [[김중기]](金重器)
* 제73대 [[이기하]](李基夏)
* 제74대 [[정홍좌]](鄭弘佐)
* 제75대 [[이홍술]](李弘述)
* 제76대 [[민함]](閔涵)
* 제77대 [[유성추]](柳星樞)
* 제78대 [[원덕휘]](元德徽)
* 제79대 [[홍하명]](洪夏明)
* 제80대 [[이창조]](李昌肇)
* 제81대 [[이상전]](李尙香全)
* 제82대 [[남오성]](南五星)
* 제83대 [[오중주]](吳重周)
* 제84대 [[정홍좌]](鄭弘佐)
* 제85대 [[조미중]](趙彌重)
* 제86대 [[김중원]](金重元)
* 제87대 [[이우항]](李宇恒)
* 제88대 [[이석관]](李碩寬)
* 제89대 [[이택]](李澤)
* 제90대 [[윤의]](尹懿)
* 제91대 [[이상집]](李尙 香集)
* 제92대 [[오중주]](吳重周)
* 제93대 [[김중기]](金重器)
* 제94대 [[이수민]](李壽民
* 제95대 [[이봉상 (조선)|이봉상]](李鳳祥) - 초대 통제사 [[이순신]]의 5대손, 이후 충청도 병마절도사로 재임하던 중 이인좌의 난 때 반란군의 손에 참수되었다.
* 제96대 [[신익하]](申翊夏)
* 제97대 [[남태징]](南泰徵)
* 제98대 [[윤오상]](尹五商)
* 제99대 [[이재항 (1672년)|이재항]](李載恒)
* 제100대 [[이복연]](李復淵)
* 제101대 [[김흡]](金潝)
* 제102대 [[이수량]](李遂良)
* 제103대 [[정수송]](鄭壽松)
* 제104대 [[박찬신]](朴纘新)
* 제105대 김준
* 제106대 [[윤택정]](尹宅鼎)
* 제107대 [[구성익]](具聖益)
* 제108대 [[조경]](趙儆)
* 제109대 [[송징래]](宋徵來)
* 제110대 이우(李玗)
* 제111대 [[이의풍]](李義豐)
* 제112대 [[이언상]](李彦祥)
* 제113대 [[장태소]](張泰紹)
* 제114대 [[정찬술]](鄭纘述)
* 제115대 [[구선행]](具善行)
* 제116대 [[조동점]](趙東漸)
* 제117대 [[김윤]](金潤)
* 제118대 [[이장오]](李章吾)
* 제119대 [[이경철]](李景喆)
* 제120대 [[오연]]
* 제121대 [[이윤성]](李潤成)
* 제122대 [[이태상]](李泰祥)
* 제123대 [[이은춘]](李殷春)
* 제124대 [[정여직]](鄭汝稷)
* 제125대 [[윤태연]](尹泰淵)
* 제126대 [[이주국]](李柱國)
* 제127대 [[이한응]](李漢膺)
* 제128대 [[이국현]](李國賢)
* 제129대 [[장지항]](張志恒)
* 제130대 [[원중회]](元重會)
* 제131대 [[조제태]](趙濟泰)
* 제132대 [[구현겸]](具顯謙)
* 제133대 [[조완]](趙岏)
* 제134대 [[이방수]](李邦綏)
* 제135대 [[이창운]](李昌運)
* 제136대 [[이경무]](李敬懋)
* 제137대 [[서유대]](徐有大)
* 제138대 [[구명겸]](具明謙)
* 제139대 [[이한창]](李漢昌)
* 제140대 [[이방일]](李邦一)
* 제141대 [[김영수]](金永綬)
* 제142대 [[유진항]](柳鎭恒)
* 제143대 [[조심태]](趙心泰)
* 제144대 [[이한풍]](李漢豊)
* 제145대 [[신응주]](申膺周)
* 제146대 [[이윤경]](李潤慶)
* 제147대 [[신대현]](申大顯)
* 제148대 [[이득제]](李得濟)
* 제149대 [[윤득규]](尹得逵)
* 제150대 [[임률]](任嵂)
* 제151대 [[이인수]](李仁秀)
* 제152대 [[이윤겸]](李潤謙)
* 제153대 [[유효원]](柳孝源)
* 제154대 [[이당 (조선의 무신)|이당]](李溏)
* 제155대 [[신대영]](申大偀)
* 제156대 [[오재광]](吳載光)
* 제157대 [[조계]](趙啓)
* 제158대 [[서영보]](徐偀輔)
* 제159대 [[신홍주]](申鴻周)
* 제160대 [[서춘보]](徐春輔)
* 제161대 [[오의상]](吳毅常)
* 제162대 [[신경]](申絅)
* 제163대 [[박기풍]](朴基豊)
* 제164대 [[조화석]](趙華錫)
* 제165대 [[이석구]](李石求)
* 제166대 [[이유수]](李惟秀)
* 제167대 [[김영]](金煐)
* 제168대 [[이항권]](李恒權)
* 제169대 [[유화원]](柳和源)
* 제170대 [[이완식]](李完植)
* 제171대 [[임성고]](任聖皐)
* 제172대 [[이정회]](李鼎會)
* 제173대 [[이승권]](李升權)
* 제174대 [[이응식]](李應植)
* 제175대 [[허계]](許棨)
* 제176대 [[백은진]](白殷鎭)
* 제177대 [[서상오]](徐相五)
* 제178대 [[김건]](金鍵)
* 제179대 [[유기상]](柳基常)
* 제180대 [[이응서]](李膺緖)
* 제181대 [[이규철]](李圭徹)
* 제182대 [[김한철]](金翰喆)
* 제183대 [[이희경]](李凞絅)
* 제184대 [[유상정]](柳相鼎)
* 제185대 [[임태영]](任泰瑛)
* 제186대 [[심락신]](沈樂臣)
* 제187대 [[이경순]](李景純)
* 제188대 [[신관호]](申觀浩)
* 제189대 [[정규응]](鄭圭應)
* 제190대 [[이재봉|이봉주]](李鳳周) -> 이재봉(李載鳳)으로 개명.
* 제191대 [[김건]](金鍵)
* 제192대 [[이현직]](李顯稷)
* 제193대 [[정규응]](鄭圭應)
* 제194대 [[채동건]](蔡東健)
* 제195대 [[이주철]](李周喆)
* 제196대 [[권용섭]](權容燮)
* 제197대 [[이종승]](李鐘承)
* 제198대 [[신환]](申桓)
* 제199대 [[이규석]](李奎奭)
* 제200대 [[정낙용]](鄭洛鎔)
* 제201대 [[정기원]](鄭岐源)
* 제202대 [[이원회]](李元會)
* 제203대 [[정운익]](鄭雲翼)
* 제204대 [[이규안]](李奎顔)
* 제205대 [[민경호]](閔敬鎬)
* 제206대 [[정기택]](鄭騏澤)
* 제207대 [[민형식 (1859년)|민형식]](閔炯植)
* 제208대 [[민영옥]](閔泳玉)
* 제209대 [[홍남주]](洪南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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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삼도 수군 ==
== 하삼도 수군 ==

2015년 11월 9일 (월) 07:41 판

삼도 수군 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는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수군(水軍)을 총지휘하는 조선시대의 관직으로 종2품이다. 지휘 관청과 해군 기지로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다. 통제사는 해군 작전사령관에 상응하는 직위이지만 통제사가 군정권 또한 행사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해군 참모총장이 군정권 뿐만 아니라 군령권도 맡고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하삼도

하삼도(下三道)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를 일컫는 말이다. 이 지명은 1377년 6월에 쓰여진 《고려사》 133권 열전에도 등장한다.[1] 따라서 그 이전에도 쓰였던 지명임을 알 수 있다.

통제사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해인 1593년에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당시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였던 이순신이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오늘날의 차관급에 해당하는 종2품 관직으로 법제화되었다. 1895년 고종 32년에 폐지될 때까지 조선 수군의 최고 통치 관청으로서 기능을 하였다.[2]

선조가 임금 겸 삼도수군을 지휘하여 왜적을 소탕하고 삼도수군통제사직을 없앴다.

하삼도 수군

조선의 수군은 하삼도인 전라, 경상, 충청과 평안도, 경기도 등지에 수영을 설치하였으며, 수영은 오늘 날의 해군 기지와 사령부에 해당한다. 통제영에서 관할하는 하삼도의 수군은 다음과 같다.

선조가 모두 지휘 하였다.

경상좌수영

경상좌수영은 경상좌도수군 절도사의 진영으로, 주로 왜구의 침입경로인 낙동강에서 경주지역까지의 수로 방어를 담당하였다. 최초로 설치된 곳은 부산 동래현이었고, 태종 때 울산 개운포로 이전하였다가, 1592년 동래 남촌으로 옮겨갔다. 1635년 인조 13년에는 최초의 장소인 감만이포로 옮겼다가 왜관과 가깝다는 이유로 1652년 효종 3년에 다시 동래 남촌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임란 당시에는 박홍이 맡았지만 일본군에 의해 와해되면서 임란이 끝날 때까지 경상좌수영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전 옥포만호 이운룡이 맡았으나 원균의 칠천량 해전 이후 삼도 수군이 전멸하자 경상좌수군은 당시 경상도 지역에서 육전에 참가하였다.

전라좌수영

1479년 성종 10년 전라도 수군절도사영이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으로 분리되면서 내례만호진 자리(현재 여수)에 설치되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591년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로 임명되었다. 5관(순천, 흥양, 광양, 낙안, 보성), 5포(사도, 여도, 녹도, 방답, 발포)를 둔 작은 수군기지였지만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고, 통제사를 겸하게 되면서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순신의 후임인 이시언 수사까지는 통제영 역할을 수행하였지만 류형이 신임 통제사로 부임한 이후에는 경상우수영에 그 지위를 넘겨 주게 된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점차 중요성이 증대되었다.

전라우수영

1377년 고려 우왕 3년에 무안 당곶포에 수군이 처음 설치된 후, 1440년 세종 22년에 해남 황원관으로 옮겼다. 1465년 세조 11년에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이억기가 전라우수사로 재임하였으며 그가 칠천량 해전서 전사한 다음에는 김억추가, 명량해전 직후 거제현령 안위가 승진하여 임명되었다. 임진왜란 때 명량해전의 주요 본거지가 되었다. 대동지지에 따르면 7관 18포로 구성되어 있어 임란 당시 조선 수군 군영 중 가장 규모가 컸다.

충청수영

고려말 왜구의 침입이 잦은 지역이었고, 간단한 형태의 방어진만 존재하다가 1447년 세종 29년 대마도 정벌과 함께 수군과 기지를 정비하고, 충청수영의 체계를 갖추었으며, 1466년 세조 12년에 충청수군절도사로 승격하였다. 왜구의 침탈로부터 방어하고 한양으로 가는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임란시에는 정걸과 선거이가 재임하였다. 정걸이 재임하던 당시 그는 행주대첩 당시 권율에게 화살등 물자를 지원하여 승리에 기여하였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최호가 맡았지만 그가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여 후임으로 임란시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휘하의 장수였던 전 경상우수사 권준이 맡았다. 현재의 오천항 지역에 해당한다.

함께 보기

바깥 링크

주석

  1. 고려사, 권133 열전 제46권, 遣使于下三道
  2. “수군진영”. 이순신프로젝트. 2009년 2월 14일에 확인함. 통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