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불로동 고분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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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불로동 고분군'''(大邱 不老洞 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대구광역시)|동구]] [[불로동 (대구)|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1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 |기타= |제목=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꺾쇠표= 예 |발행일자=2009 |출판사=㈜위즈덤하우스 |id=ISBN 978-89-92879-05-7 |쪽=110 }}</ref>
'''대구 불로동 고분군'''(大邱 不老洞 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대구광역시)|동구]] [[불로동 (대구)|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1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ref>{{서적 인용 |저자=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 |기타= |제목=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꺾쇠표= 예 |날짜=2009 |출판사=㈜위즈덤하우스 |id=ISBN 978-89-92879-05-7 |쪽=110 }}</ref>


== 참고 자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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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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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31일 (일) 22:52 판

대구 불로동 고분군
(大邱 不老洞 古墳群)
대한민국사적
150
지정번호 사적 제262호
(1978년 6월 23일 지정)
소재지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좌표 북위 35° 54′ 55″ 동경 128° 38′ 41″ / 북위 35.9153864° 동경 128.6448402°  / 35.9153864; 128.6448402
제작시기 삼국시대
소유자 국유,사유
연면적 298,824㎡
비고 유적건조물 / 무덤 / 고분군

대구 불로동 고분군(大邱 不老洞 古墳群)은 삼국시대의 무덤군이다.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해 있다. 이 지역 일대를 지배하고 있던 토착 지배 세력의 집단 무덤으로 알려져 있는데, 외형이 명확하지 않은 고분을 제외하고도 그 수가 무려 211기에 이른다. 언뜻 봐도 수백기가 족히 넘어 보이는데, 분구의 규모는 지름 15~20m, 높이 4m 전후하여 제법 웅장한 느낌을 준다. 매장 주체부인 수혈식석곽의 규모는 길이 4.5~8m, 너비 0.8~1.2m, 깊이 1.0~2.2m 정도이다. 석곽의 네 벽은 냇돌 또는 깬돌을 이용하여 쌓고, 바닥은 특별한 시설을 하지 않는다. 일부 석곽에는 간벽을 쌓아 유물을 부장하는 공간과 시신을 매장하는 것이다. 발굴 당시 이미 상당수의 금은제 유물이 도굴된 뒤였지만, 고대사회의 일면과 대구 분지의 옛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1978년 한국의 고분군으로서는 최초로 사적 제262호로 지정되었다.[1]

참고 자료

각주

  1.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협회 (2009). 《대한민국 걷기 좋은 길 111》. ㈜위즈덤하우스. 110쪽. ISBN 978-89-92879-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