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만주철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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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1일 (월) 17:12 판
동만주철도(東滿洲鐵道)는 일제치하의 조선 함경북도(현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함경북도) 온성군에 있는 북선동부선(함북선) 훈융역과 만주국 간도성 훈춘현(현재 중화인민공화국 지린 성 옌볜 조선족 자치주 훈춘 시)에 있었던 반석역(磐石驛)을 연결했던 철도노선과 여러 지선 및 그 노선들을 운영했던 회사를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이 노선은 폐지되었고 현재 훈춘시내의 구간의 일부는 투훈 철로 노선으로 대체되어 있다. 훈융역에서 두만강철교의 중심까지는 1.2km였는데 이 구간은 일제의 지방철도법의 적용을 받았고 나머지 구간은 만주국의 법률인 사설철도법의 적용을 받았다.
노선정보
- 영업구간: 훈융역~반석역(磐石), 낙타하자역(駱駝河子)~로우룽커우역(老龍口), 마권자(馬圏子)~동묘령(東廟嶺)
- 노선의 거리: 73.1km(이 가운데 조선측은 1.2km였음)
- 궤도간격:762mm(협궤)→1435mm(표준궤)
- 복선구간: 없음
- 전철화구간: 없음
역수에 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역사
1932년 8월에 일본의 자본으로 훈춘철로(琿春鐵路)가 설립되어 북선동부선의 경원역과 훈춘을 연결하는 궤도간격 762mm인 경편철도의 건설이 계획되었다. 이후에 이 노선의 기점이 경원역에서 훈융역으로 변경되었으나, 용지매입의 문제와 조선과 만주국 법률 사이의 충돌문제로 두만강교량의 건설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문에 회사측에서는 불가피하게 만주국 영토에서 노선을 개통하기로 하여 用湾子를 잠정적으로 기점으로 삼아 철로를 건설하였다. 그리하여 1935년 7월 10일에 湾子 - 琿春 구간이 개통되었다. 그 이후에 조선측에서 철도용지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같은 해에 훈융역과 用湾子 구간이 개통되어 철도건설은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북선동부선 사이의 여객과 화물의 연계수송은 이 시점이 아니고 1936년 2월부터 개시되었다.
훈춘 지역은 만주국의 가상적국인 소비에트 연방과 접경지역이 되었기 때문에 동만주철도의 중요성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1938년 3월에는 훈춘철로의 경영진이 도쿄에서 '동만주산업'(東滿洲産業)이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하고 같은 해 6월 15일에 훈춘철로를 매입하여 동만주산업의 자회사로 만들었다. 그리고 훈춘철로가 있던 장소에는 '동만주철도'라는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이후에 이 철로는 남만주철도와 규격이 똑같이 될 필요가 있었으므로 1939년 11월에는 궤도간격이 표준궤로 바뀌었고 이에 따라서 두만강교량도 개축되었다. 이에 따라서 만주국철도의 기관차가 이 노선에 투입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노선의 연장도 계획되었는데, 1940년 10월에는 본선의 일부인 琿春 - 駱駝河子 구간과 지선인 駱駝河子 - 哈達구간, 같은 해 11월에는 본선의 일부와 廟嶺지선에 해당하는 駱駝河子 - 馬圏子 - 東廟嶺 구간이 각각 개통되었다. 다음 해인 1941년 11월에는 본선인 馬圏子 - 磐石구간과 磐石지선인 哈達門 - 乾溝子 구간이 1942년 10月에는 磐石지선인 乾溝子 - 로우룽커우역(老龍口驛) 구간이 각각 개통되었다. 이후에도 연장계획이 있었으나 결국에 실현되지 못한 채로 종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주석 및 참고문헌
- 市原善積編, 『南満洲鉄道 鉄道の発展と機関車』(誠文堂新光社刊、1972年)
- 今尾恵介・原武史監修, 『日本鉄道旅行地図帳 歴史編成 満洲樺太』(新潮社刊、2009年)
- 日本鉄道旅行地図帳編集部編, 『満洲朝鮮復刻時刻表』(新潮社刊、2009年)
같이 보기
바깥고리
- (일본어) 동만주철도의 위치와 1942년 당시의 시각표